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의 한 영화관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했다.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문화 활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영화 관람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영화 (관람)의 정치학’이라고 지칭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영화 관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선 유세 기간에는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1달에 1번 정도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하는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살인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의 재심 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을 보고 “영화를 보며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졌다”며 대선 공약인 ‘적폐 청산’을 강조했다. 2012년 대선 정국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뒤 “인간적인 왕의 모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봤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5분 넘게 눈물을 흘렸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야권 표심을 결집시켰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했던 문 대통령은 영화 ‘변호인’을 통해 정계 복귀를 암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를 관람한 뒤 그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들어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며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직설적인 영화평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성향과 유사한 영화만을 편식하지 않았다. 그는 보수 성향의 영화라고 평가 받은 ‘국제시장’, ‘연평해전’도 관람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중장년 보수층을 겨냥해 정치적 스펙트럼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2014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화 '넛잡'을 관람하는 모습/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화 관람을 통해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신이 국정과제로 삼았던 창조경제, 문화융성 등의 정책적 메시지도 담겼다. 당선 뒤 처음으로 본 영화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를 비롯해 ‘넛잡’ 등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 등 주로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를 선호했다. 2015년 1월 박 전 대통령은 ‘국제시장’ 관람 후 “영화에서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인천상륙작전’을 본 뒤 “북한의 도발에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라”고 지시해 ‘안보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인천상륙작전’ 관람이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호국영령의 정신을 한번 더 되새기고, 최근 북한의 핵 위협 등 안보 문제와 관련해 국민이 분열하지 않고 단합된 모습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하기 위해 상영관으로 향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관람한 영화들은 정치적 색깔과 거리가 멀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1월 핸드볼 여자국가대표팀의 활약을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내가 함께 하면 뭐든지 잘 된다. 오늘을 계기로 관객 100만명이 더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 관람 당시 144만명이었던 관객 수는 최종 404만명을 기록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월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그해 10월에는 장애인학교의 인권 실태를 다룬 영화 ‘도가니’를 관람했다.
영화 '길' 관람을 위해 상영관 자리에 착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사진=노무현 사료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영화관을 가장 많이 방문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이후 2006년 1월에야 처음으로 영화관을 찾아 ‘왕의 남자’를 관람했다. 그해 4월에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맨발의 기봉이’를 봤다. 이듬해 1월1일에는 독립영화 ‘길’을 관람했다. 배신과 용서라는 영화의 주제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신년 화두로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독립영화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에 선택했고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라 고르게 됐다”고 해명했다. 같은해 6월에는 참여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관람했다. 대선을 앞둔 9월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려 정치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좌), 고 김영삼 전 대통령(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화 애호가로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은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부활의 노래’를 본 뒤 노태우 정권이 대한민국을 공안 정국으로 다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서편제’, ‘그 섬에 가고 싶다’, ‘영원한 제국’ 등을 관람하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면서 영화의 정치학의 선구적 인물로 떠올랐다. 이외에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화려한 휴가’ 등을 봤지만 모두 재임 기간 관람은 아니다. 영화의 정치학은 고 김영삼 전 대통령때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서편제’를 관람한 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되겠다. 문화대국으로 가는 것도 신한국건설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후 ‘서편제’는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기록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영화 ‘쥬라기 공원’과 현대자동차의 매출을 비교하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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