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이민정책, 진지하게 고민할 때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필자가 브뤼셀에서 근무하던 2010년의 일이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밀입국자 단속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분쟁과 빈곤, 박해에서 벗어나려는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이민자들이 유럽으로 물밀 듯이 밀려왔기 때문이다.유럽 각국 정부는 불법이민자 추방과 신규이민자 규제로 대응했다. 2010년 8월 프랑스 사르코지 정부는 집시들이 거주하는 불법시설물을 철거하고 이들을 본국으로 추방명령을 내렸다. 그해 10월 출범한 네덜란드 연립정부는 반이민을 새 내각의 주요정책으로 내세웠다. 불법이민 문제는 다분히 지난날 유럽이 취해온 친이민 정책의 결과이다. 2005년 EU 집행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EU회원국에서 80세 이상 노령인구는 2005년의 2배에 달하는 반면 15세 미만의 비경제활동인구는 계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이민자가 없었다면 유럽 인구는 오래전에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이민자들의 유입이 유럽의 인구노령화를 완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이유로 당시 유럽 국가들 대부분은 자국 노동시장을 개방하고 동시에 고용계약을 전제로 불법체류자의 상당수를 합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유럽의 관대한 이민정책은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출신의 불법이민자들의 유럽 행렬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겨 자국민들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유럽 각국들은 이민 규제정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최근 들어 일련의 테러 발생과 맞물려 난민을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난민을 유럽연합 회원국에 분산 수용하는 '난민 쿼터제'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EU 각료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진 동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혜택은 별로 없고 분담금만 늘어난 영국은 작년 6월 국민투표를 치른 후 올 1월 17일 EU 탈퇴를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국경 통제를 강화해 자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를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유럽대륙이 취해온 이민 규제정책에서 한발 앞서나간 정책이다. 미국 정부는 영국보다 더 강경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이라크, 시리아, 수단과 같은 국가의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한시적이지만 사실상 이민자를 배척하는 조치이다. 유럽 대륙을 시발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확산된 반이민 정책이 한층 강화되는 양상이다. 세계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자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한 반이민 정책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올 3월부터 네덜란드 총선을 시작으로 유럽 주요 국가들의 잇따른 정치 일정은 반이민 정서를 확산시킬 공산이 크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불법이민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국가였으나 이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서고 실업자 수도 135만명을 넘어선 지금 이민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부족한 단순 노동인력을 외국에서 충원하는 수준을 넘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고급인재들의 유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이민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준비 없는 개방적 이민정책은 자칫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사회불안만 가중시키는'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북한의 급변사태에 따른 난민의 대량 유입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관대한 이민정책에 따른 무슬림의 대량 유입으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EU의 현실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사회가 직면한 출산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잠재 성장률 둔화와 경제활력 저하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로 외국의 고급인력 유입을 촉진하는 개방적 이민정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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