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된 朴의 불통정치

집권 내내 '소통하라' 제언에도 마이웨이 고수

대면 대신 서면보고 선호…세월호7시간 의혹에 '자승자박'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끝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여론의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탄핵 이후 여론반전을 모색했지만 결과적으로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박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탄핵정국이 시작된 이후 박 전 대통령이 대면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즐기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나 조윤선 전 정무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을 직접 본 적이 없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민심은 더욱 분노했다. 인터넷에서는 "관저에서 혼밥(혼자 밥먹기)하기"라는 조롱이 쏟아졌다.특검이 끝내 밝히지 못한 세월호 7시간 의혹이 탄핵정국 초기에 더욱 파장을 낳은 것도 박 전 대통령의 자승자박이라는 분석이 많다. 세월호참사 당일 참모들을 대면해 보고를 받았다면 결과적으로 '미용시술'이나 '굿판을 벌였다'는 식의 황당한 언론보도는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최순실 비선실세 의혹이 불거지기 전부터 소통방식에 대해 갖가지 경고음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여론을 끌고 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게 결정적인 패착이 됐다.박 전 대통령이 소통에서 문제점을 드러낸 단적인 사례는 지난 2014년 말에 터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었다. 이른바 비선실세가 국정에 관여한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인데,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추며 관련자들을 엄벌하겠다고 밝혔다.박 전 대통령은 2014년 12월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정과 관련된 여러 사항들뿐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과 각종 민원들이 다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이 있다"면서 "만약 그런 사항들을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내부에서 그대로 외부로 유출시킨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사회에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며 비선실세 문제 보다는 문건 유출에 초점을 맞췄다.박 전 대통령은 "이번에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이는 박 전 대통령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15년 1월 박 전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본인의 소통방식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박 전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실질적 인사권을 줘야 하고 대면보고를 늘려야 한다는 취지의 질문에 뒤에 앉은 각료들을 돌아보며 "그런 게(대면보고를 늘리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어 소통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소통 부재는 최순실 사태 이후 더욱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청와대는 지난해 10월25일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이 최순실의 태블릿PC에 담겼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부터 속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의혹이 나오면 해명도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는 위증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그러는 사이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탄핵 직전 1997년 IMF의 구제금융위기를 촉발한 김영삼 전 대통령 보다도 낮은 4%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인 '소신과 원칙'도 빛이 바랬다.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선된데 이어 세월호 참사 등 악재를 뚫고 버틴 것은 원칙과 소신 덕분이었다. 이보다 앞선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대해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 고수로 맞서 관철시키면서 박 전 대통령의 '원칙' 이미지는 더욱 부각됐다. 특히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조치는 보수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원칙과 소신'이 극과 극을 달리면서 결과적으로 치명타를 입게 됐다. 원리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오히려 차가운 이미지를 심어준 측면도 있고 최순실게이트에서는 원칙이 흔들렸다는 비판을 받았다.박 전 대통령은 2014년 10월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에서 농성중인 유가족에게 눈길을 주지않고 입장해 '대통령으로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또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역린'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사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박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문고리3인방',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사퇴시킬 수 없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댔다.이는 원칙과 소신이 측근에게는 예외라는 인식을 각인시켰고, 결국 최순실 게이트로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로 이어졌다.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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