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언제까지 박정희式 대통령만 기대할 것인가'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대선주자 초청 ICT인들과의 대화'는 '이제 가도 된다'는 주최 측과 '더 남아 이야기를 듣겠다'는 안희정 충남지사 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사회자 : "정해진 시간이 오버(over)가 됐습니다. 다음 일정 가셔야 하는 안 지사님 마지막 말씀 이제 듣겠습니다."안희정 : "앞에 걸린 현수막에 '안희정 대선주자 초청 ICT인들과의 대화'라고 되어 있는데 제가 저녁 식사를 못 하더라도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말씀 더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래서 제가 매번 끼니를 제대로 못 먹습니다.(웃음)"8명의 토론자 가운데 5명의 토론자 발표가 끝난 시점이었다. 주최 측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자 안 지사의 다음 일정으로 떠날 수 있도록 정리 발언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안 지사는 마저 이야기를 듣겠다며 남겠다고 말했다. 청중들을 상대로 기조연설한 뒤 사진 찍고 떠나는 '대화'와는 구성이 달랐다. 대선주자를 불러 진행하는 '대화'임에도 안 지사는 말하는 쪽보다는 말을 듣는 쪽을 선택한 점도 이색적이었다.형식도 남달랐다. 이날 대화는 ICT전문가들이 온라인 광고, ICT업계 내부의 갑을 관계, 인력 유출, 규제 완화, 클라우드 산업, ICT 정부 거버넌스 등 현안에 대해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특이했던 점은 자리배치였다. 무대 단상에는 8명의 전문가가 앉아서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반면 안 지사는 무대 단상이 아닌 일반인 객석에서 발표 내용을 듣는 식이었다. 이런 낯선 풍경 때문에 주최 측이 '무례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8일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ICT인들과의 대화에서 참석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급기야 사회자가 자리배치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주최 측은) 안 지사를 단상으로 모시려고 했었다"고 소개하며 "(그런데) 안 지사가 자신은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 전문가와 함께 눈높이를 맞추고 토론을 하겠는가. '청중과 함께 듣고 공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자리 구성이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안 지사는 토론회를 들으며 발표자 발언이 끝난 뒤 마무리 발언을 통해 자신이 들었던 생각과 필요한 정부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했다. 대화의 요체는 또다시 기승전'민주주의'였고, 정부 주도의 산업발전 방식의 폐기였다.안 지사는 마무리 발언을 통해 "정부의 일하는 방식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가들에게서 들은 외국의 사례를 언급한 뒤) 미국이든 프랑스든 민간의 역량과 정부가 거버넌스를 이뤄 협치를 하는데 우리는 관(官)이 만들고 움직여야 움직일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안 지사는 "거버넌스는 민간의 역량과 정부가 좋은 협업 관계를 만들고 더욱더 많은 주도성을 민간과 시민에게 이전해야 하며, 정부는 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 도와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필요할 경우 돕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정부가 주도해 판을 깔고 참여시키는 구조다 보니 동력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성장동력의 회복 대해서도 안 지사는 '민주주의'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확실히 혁신하지 않으면 우리가 말하는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포항제철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결단하셨고, 경부 고속도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결단하셨고,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렸다며 휴게소에 걸려 있는 나라가 말이 되냐"면서 "이런 체제로는 대한민국의 현실의 과제, 미래를 못 연다"고 주장했다.안 지사는 "(그런데도) 새로운 정부를 이끌겠다는 후보들이 나서서 스타트업이고 이런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하겠다고 말한다"면서 "이런 것 자체가 아직도 박정희 시대를 못 넘어선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정치 일방주의'라고 부르며 "정치가 과잉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28일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ICT인들과의 대화에서 참석자들의 발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안 지사는 "제가 대통령에 도전하자, 대통령이 모두 결정할 것처럼 (사람들이) 제게 묻는다"면서 "(그런 질문에) 아는 척을 하면서 '이렇게 하렵니다'라고 박력 있게 이야기 하고 싶어도,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아서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그렇게 결정하면 아무래도 안 되는 것 같다"면서 "(후보자가 모든 사안에 대해) 뭔가 확고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후보들은) 화끈하게 다 하겠다고 하는데 저는 정치가 과잉결정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계속 밝히겠다"고 밝혔다.안 지사는 "지난 박정희 시대 국가와 관 주도의 사회를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모든 도전의 창의는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어느 세월에 대통령의 자애로운 사랑을 가지고 지원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통해 개인의 창의와 도전은 더 자유로워지고 시장의 공정한 경쟁은 활성화되어야 한다"며 "그래서 5000만명 모두가 이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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