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직무정지로 쓸쓸한 4주년
5년 단임제 개헌 이후 매 정권 4년차마다 고비[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1987년 개헌으로 탄생한 '대통령 5년 단임제'는 3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뚜렷한 명암을 남겼다. 장기독재를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권 말을 향할수록 커지는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그 대가로 얻어야 했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4년차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4년차라는 마(魔)의 덫에 갇힌 것이다.오는 25일 취임 4주년을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을 넘어 아예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험악한 징크스를 겪은 셈이다.5년 단임제가 정착된 이후 역대 정권에서 4년 차는 언제나 고비였다. 측근 비리와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어김없이 터져나왔고,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11월 4%까지 곤두박질 쳤다. 역대 최저치 수준이다. 역대 대통령 중 기존 지지율 최저치는 김영삼 대통령이 6%를 기록한 바 있다. 다음으로 노무현 대통령 12%, 이명막 대통령 21%, 김대중 대통령 24% 순이다.측근 비리는 역대 정권의 4년차에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단골 메뉴다. 노태우 정부 때는 4년 차인 1991년 서울 강남구 수서ㆍ대치지구 불법개발 사건인 '수서비리'사건이 터져나왔다. 대검찰청이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국회의원 5명을 구속하면서 노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결국 그해 3월 총선에서 여당인 민자당은 115석으로 과반의석을 채우지 못했다. 국회는 여소야대 국면으로 전환됐다.김영삼 대통령도 청와대에 들어간 지 4년차가 되던 1996년 집사로 불린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17개 기업에서 총 27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또 김 대통령을 한 방에 보낸 한보그룹 사태도 집권 4년차에 터졌다. 김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등 가신과 측근이 무더기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자 결국 김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고개 숙여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김대중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대통령은 집권 4년 차이던 2001년 각종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몸살을 앓았다. 홍콩에서 살해당한 한국 여성 '수지김' 사건을 14년간 은폐한 '윤태식 게이트'를 비롯해 2300억대 불법대출과 주가조작으로 경제계를 뒤흔든 '진승현 게이트', 680억대 횡령이 적발된 '이용호 게이트' 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또 김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씨와 처조카 이형택 씨,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등 권력 핵심인사들의 비리 역시 줄을 이었다.이명박 정부 때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비리의혹의 핵심에 있었다. 결국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 의원은 '포스코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았다.또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자 이상득 의원의 친구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비리 혐의로 구속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 대통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08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돈봉투를 돌린 의혹이 집권 4년차에 터지면서 2012년 1월 의장직에서 사퇴한 후 검찰 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됐다.이외에 대선 캠프 때부터 참여해 정권 창출에 공헌했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김효재 전 정무수석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지시 의혹을 받고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노무현 정부 때는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전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사장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점이 대표적인 측근 비리로 꼽히지만 집권 초기라는 점에서 다른 정부와는 거리가 있다.노 대통령의 경우 경제 실정문제가 집권 4년 차때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집권 초기부터 쌓여온 각종 불만이 정권말의 길목인 4년 차에 한꺼번에 터져나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노 대통령의 4년 차는 또 다른 차원의 위기를 겪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노 대통령은 집권 4주년을 즈음한 2007년 초 느닷없는 개헌카드를 던쳐 정치권에 충격파를 던졌다. 야당과는 물론 여당과도 갈등을 빚으면서 정치적으로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특히 개헌을 위해 탈당도 감수하겠다는 발언이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여당 의원들이 잇달아 탈당을 시도하자 노 대통령은 "차라리 내가 나가겠다"며 집권 4주년에 맞춰 당을 떠났다. 집권당의 버팀목 없이 임기 말 1년을 맞게 됐고 한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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