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혁신(innovation)과 혁명(revolution)의 차이가 무엇일까? 웹스터 사전 등을 검색해 봤다.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 방법, 디바이스 등의 등장을 이야기하고, 혁명은 갑작스럽고 급진적이지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전하고 근본적인 변화(fundamental change)로 정의한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이다. 대권주자들이 4차 산업혁명 어젠다를 두고 서로 반박하며 선점하려는 것을 보면 아마도 현재를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모두 동의하는 것 같다. 제시하는 어젠다들도 유사하다. 하지만 대선후보들 개인이 생각하는 명확한 정의를 듣지는 못했고, 아직은 세계경제포럼의 틀 속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현재를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혁명이 아닌 혁신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신과 혁명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이야기한 이른바 혁신들, 즉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기술 혹은 교육 등 관련 분야의 소위 컨트롤타워를 조직하면, 모든 기술들의 세계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고 일자리와 경제문제 등 우리가 직면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기술개발이 쉬운 것도 아니다. 미국 하이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로봇과 인공지능, 역시 미국 공유경제 기업들이 주도하는 차량과 공간공유 등의 비즈니스와 자율주행자동차, 독일이 주도하는 스마트 팩토리, 거의 모든 분야의 다크호스로 등장한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기술들을 우리가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과 상관없이 이들 국가와 하이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오랜 기간 기초기술과 상용화 기술 연구와 투자를 거쳐 시장 선점 경쟁을 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우수 인력은 싹쓸이 한 지 오래다. 사실 세계경제포럼이 말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이미 1990~2000년대 우리나라 대학, 출연연, 기업 등에서 연구하던 기술들이 대부분이다. 단지 기술 수준이 현재에 미치지 못한 초기 단계였을 뿐이다. 아쉽게도 정부와 기업 모두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소위 단기성과에 집착해 유행기술로 갈아타다 보니 우리는 적지 않은 기회를 놓쳤다. 패스트 팔로우어를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면서, 또다시 우리가 오랜 시간 충분히 반복적으로 경험한 패스트 팔로우어의 비극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나라가 주름잡는 기술들의 국산화, 독자개발, 한국형 등 과거 산업시대의 가치와 기준에 또 다시 구속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압축성장이었다. 서양 국가들이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을 거쳐 현재의 기술과 근대 국가시스템을 완성시킨 과정을 1960대 이후 단시일 내에 완성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단기적 양적 성과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관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정책과 기술개발의 연속성을 저해하고 있다. 당연히 정부가 중요한 생산자이자 공급자였던 시대가 끝났지만, 아직까지도 대권주자들은 이러한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있다.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혼동하고 있다. 이제 기술발전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핵심 플레이어가 기업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정부는 수직적인 컨트롤타워로 군림하기보다 아이들과 국민들이 혁신가로 성장해 창업을 하거나 기업에서 글로벌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순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과학과 기술, 산업, 교육,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예산, 국방 등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와 조직들을 촘촘히 수평적으로 연결하고 조율해 항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메커니즘을 가진 최적의 플랫폼을 의미한다.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제공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가치에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는 환경 마련을 위한 정부의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하다.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정부의 혁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플랫폼이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정책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법과 절차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2017년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인지 아닌지는 후대에서 평가할 것이다. 정권교체기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정부부처들은 새로운 키워드인 4차 산업혁명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고, 다수의 지자체들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학습과 정책비용이 계속 반복적으로 소요되다 보니 관련 조직들의 피로도도 매우 높다. 어설픈 접두어라면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게 낫고,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혁신을 넘어 혁명적인 사고로 접근하는 것이 정답이다. 더 이상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뒤처지면 우리 아이들에게 책임질 수 없는 미래를 남겨줄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