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정덕구 前 산업자원부 장관
외환·금융위기 때와 발단부터 달라세계 침체국면·산업 구조적 문제·경제정책 관리 실패 '복합'무너진 정책결정 과정 되살리려면정치패거리들에 휘둘리지 말고관료들이 제자리·제역할 찾아야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니어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27일 서울 여의도 니어재단 이사장실에서 아시아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 보이지 않는 에러가 많다"고 지적했다.<br />
[대담=박성호 정치경제부장] “지난 10년간 보수세력의 경제 실패는 정치적으로 심각한 의미를 가져왔다. 시장주의,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보수정권이 어떻게 경제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을까. 기이한 현상이다. 경제학자나 전문가들 모두 해석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중·노무현 진보 정부 이후 보수세력이 10년 동안 체계적으로 무너진 사건이다.”지난해 12월27일 여의도 니어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니어재단 이사장)은 박근혜정부의 경제 정책의 실패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행시 10회로 공직에 입문해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 극복에 앞장섰던 경제관료이자,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도 최근 경제 상황은 복잡다단한 원인이 얽히고설킨 문제라며 신중하게 진단을 내렸다.먼저 정 이사장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 경제위기와 지금의 위기는 발단부터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지금까지 위기가 10년 주기로 나타났다”면서도 “1997년 한국 경제상황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추격기 하반기였고 2008년은 추격을 해서 정점에 도달한 순간에 있었다”고 분석했다.그는 “1987년 체제 이후 30년 동안 우리의 경제생태계가 엄청나게 변했다”면서 “그러한 변화를 모르고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 10년 동안 박정희 개발모형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고 지적했다. 기후와 토양이 바뀌었는데 과거 정책을 답습하다 고꾸라진 것이 1997년 위기라고 평가했다.이어 “2008년은 한국 경제가 정점에 있었기 때문에 추격을 받는 것이 덜한 상황이었고 지금처럼 중국도 쫓아오지 못했다”면서 “대신 중국이 세계 경제에 온수를 공급하는 유일한 지역이 됐고 우리는 인접국가로 비교적 따뜻한 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여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정 이사장은 “지금은 심각한 정체기에 빠져있다”며 “생태계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 경기순환의 침체국면, 산업·인구 등 구조적 문제, 경제정책의 관리 실패 등 3가지 요인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정 이사장은 “우선 세계 경기순환이 침체 국면에 들어갔고 두 번째로 산업, 빚, 소득, 인구 등 구조적 위기가 발생했다”며 “마지막으로는 경제 관리의 실패로 통찰력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의사결정권자로 있으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등 융·복합 위기가 몰려왔다”고 진단했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니어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27일 서울 여의도 니어재단 이사장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br />
'옛것이 늙었는데 새것으로 대체를 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총체적인 위기진단 핵심이다. 그는 “조선산업을 예로 들면 가장 기본적인 용접에서 선박 디자인까지 사업영역이 있는데 우리는 중간이라고 볼 수 있는 엔진제작까지는 진출했지만 금세 중국에 추월당했다”며 “이명박 정부 시기 중후장대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했어야 하지만 경영진들조차 외면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정 이사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산업자원부 장관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장관 시절 산업정책을 내놓으면서 기존의 조립 산업 위주에서 부품소재 산업으로 전환했었다”며 “산업 발전으로 박정희 정부 이후 고수해오던 조립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우리는 경상수지 만성 적자국이 되고 외환위기가 반복될 것이라는 점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설득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특히 그는 현 정부에 '보이지 않는 에러'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는 평소 좋아하는 야구를 예로 들며 “보이지 않는 에러는 기록되지 않는 실책”이라며 “타자가 공을 치면 즉시 수비수는 몸을 움직여서 공을 잡아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늦게 움직이면 보이지 않는 실책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그는 “관료들이 정치·정책 결정과정에서 외부자로 밀려났다”며 “그 빈자리를 정치인과 폴리페서(polifessor),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최순실처럼 정치 패거리가 차지하다 보니 적기에 판단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고도 알지 못해 제조업을 망치는 것을 방치했다”고 일갈했다. 이 과정에서 국책금융기관들도 정치적으로 움직이면서 산업구조 전환의 장애물이 됐다고 덧붙였다.'경기 침체 국면, 구조적 위기, 경제 관리의 실패'라는 3대 요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심을 반영한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 이사장은 “정치·정책 프로세스와 국가 지배구조를 재건축해야 한다”며 “외부자로 밀려났던 관료를 내부자로 넣고 국회를 견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국가 권력기관인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권체계 아래에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무너져버린 정책 결정 과정을 되살릴 수 있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부도 과감하게 의회를 해산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올라가야 한다”며 “견제와 균형을 되찾아 국가 거버넌스(통치체계)를 재건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이러한 연장선에서 그는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는 “철저한 정경분리가 제일 중요한 과제인데 위기관리의 독립성을 위해서 정경분리가 필요하다”며 “경제 위기관리팀을 재구성해야 하고 능력 있는 관료들을 적재적소에 앉혀서 즉각적인 정책결정으로 그때그때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현재 관료들에게서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라고 단언했다. 정 이사장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유일호 경제팀의 과제는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다가올 태풍을 두고 미리 겁을 주는 식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면 안 되지만, 위기감을 갖고 잘못되면 역적이 된다는 각오로 정치에 휩쓸리지 말고 경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정 이사장은 강한 경제팀을 재차 강조했다. 올해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권 후보 간에 포퓰리즘 공약이 봇물 터지듯 나올 수 있는데 유력 후보의 공약이라고 해도 틀렸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정리=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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