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만난 한 중소기업의 대표는 회사가 시장에서 자생력과 경쟁력을 잃으면 퇴출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연한' 그것이 그동안 시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품질이나 재무구조가 매우 부실하더라도 운 좋게 정부의 정책자금이나 금융권 대출을 받아 연명해 온 '좀비기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기업이 이런 식으로 살아남는다면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 부실기업들에 자금이 들어가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잠재성 높은 기업들이 그만큼 자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우수한 품질과 경쟁력을 갖추고도 국내외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한 순간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안타깝게 시장에서 사라진 기업들도 있다. '신생 창업기업→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지속성장해야 할 선순환 구조가 흔들리면 산업과 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주영섭 중소기업청 청장이 내년 창업정책 혁신실천의 일환으로 밝힌 부실한 창업보육센터(BI)의 퇴출 제도 정비 계획은 환영할 일이다. 경영벌점 누적제를 도입해 수준 이하의 부실ㆍ저성과 센터를 퇴출할 방침이다. BI는 1998년 이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창업벤처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창업기업에 공간과 멘토링을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전국 267개 창업보육센터에서 6589개 창업기업이 육성되고 있다. 센터가 부실하면 여기서 보육되는 기업들의 지속성장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동안 기본적인 보육기능을 상실했거나 성과 미흡 등 부실 BI의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추진돼 왔다. 그렇지만 지정취소 요건이 법령상 엄격하게 규정돼 있어 실질적인 퇴출 통로를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신생기업은 물론 부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분위기가 강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일 중소기업들의 신용위험을 평가해 176개사를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했다. 과거 3년 평균(137개사) 보다 28.5% 증가한 수치다. 이는 국내 경기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 평가를 강화한 결과다. 중소기업들 스스로 원가절감 등을 통한 내실경영과 새로운 판로개척 노력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겠지만 정부의 정책지원도 필요하다. 엄정하게 옥석을 가리는 일이 중요하다. 퇴출이 필요한 기업과 회생 기회를 줄 만한 기업을 제대로 골라내야 한다는 얘기다. 시국이 혼란스럽다. 경제는 물론 사회도 어수선하다. 국가 전반 곳곳에서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부실이 불러온 부작용의 피해는 심각하다. 부실이 계속되면 사회·경제 생태계가 병들고 결국 나라가 망한다. 기업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실의 정도가 심각해 자생력을 잃었다면 기업이든 사람이든 퇴출돼야 한다. 김대섭 산업2부 차장 joas11@
산업2부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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