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외교의 득과 실

오준 전 유엔 대사.

2006년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크래쉬'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종간의 갈등을 다뤘는데, 어떤 특정 인종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인종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설정이 독특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고 편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원래 악인과 선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필자는 특히 좋아한다. 말하자면 돌고 도는 세상이라는 것이다.국제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자기중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국익을 추구한다. 국익이 충돌할 때 서로 다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도록 국제법도 있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도 있지만, 힘이 강한 국가가 이익 실현에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모든 국제문제를 언제나 자기 뜻대로만 다룰 수는 없다. 그래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외교가 필요한 것이다. 평생 외교관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외교 협상을 보았고 직접 참여하였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성장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외교협상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능력도 커졌다. 그 가운데 얻은 교훈은 항상 다른 국가들과 함께 살고 그들의 이익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외교의 기본전제라고 하겠다. 오늘의 협상에서 우리가 이익을 취하면 내일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갖게 해줘야 한다. 필자가 외교협상의 대표를 맡을 때 담당관이 우리가 의도한 결과가 나왔다고 보고해 오면 상대방은 무엇을 얻었는지 꼭 물어보았다. 우리가 일방으로 좋은 결과를 따냈다고 할 경우에는, 아전인수 식의 과장이거나 만일 사실이라면 꼭 잘된 협상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100에서 80을 취했다면 다음 협상에서는 20 밖에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번에 80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검토 없이 무조건 다다익선으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외교협상에서는 그때그때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큰 외교 목표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외교 목표는 달성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경우에는 양보를 할 수 있는 지혜와 전략적 발상이 필요하다. 만일 자기가 맡은 일만이 중요하다는 식의 관료적 접근방식이나 또는 정치적 고려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국익보다는 눈앞의 실적 중심으로만 대처한다면 다른 국가들에게 외교파트너로서의 신뢰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은 중장기로 나타나므로 정부나 국민들이 그때그때 문제를 의식하기도 어렵다. 또한 모든 외교협상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돼야 한다는 기대가 만연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게 마련이니까 정부는 성과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홍보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국익 실현을 저해해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마치 일기예보를 할 때, 좋은 날씨가 예보됐는데 기상이 나쁘면 예보자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반대의 경우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예보자로서는 날씨가 나쁠 것 같다고 예보하는 것이 안전한 것과 같다. '마음에 드는' 일기예보보다 '정확한' 예보가 우리 모두의 공익에 부합한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번번이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는 외교보다는 장기의 국익 실현에 도움이 되는 외교성과를 평가하는 성숙함이 필요한 때가 됐다. 그것이 민주사회에서 국민을 위하는 외교라고 본다. 유엔대사로서 지난 6개월간 유엔외교의 중요한 이슈들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데 대해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오준 전 유엔대사<ⓒ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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