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영화 '스플릿'서 색다른 매력 발산...'주유소 습격사건' 페인트 얼굴로 돌아가
美·加 시장 두드리고 TV예능 출연 바쁜 나날...틈틈이 시나리오 쓰며 연출·연기 병행 이어가
배우 유지태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유지태(40)는 차분하다. 취미가 사색이다. 류이치 사카모토(64)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배우를 하면서 생긴 습관. 다양한 인물을 깊이 있게 표현하려는 그만의 변주 준비다. 순발력이 떨어져서 언제나 '스탠바이'다. 어떤 인물이 주어져도 금세 스며들 수 있도록 규칙적인 삶을 고수한다. 근육을 골고루 자극하는 크로스핏으로 균형을 잡고, 복싱과 자전거로 체력을 단련한다. 그래서 선율, 리듬, 화성 등이 갑자기 달라져도 무난하게 대응한다. 오늘은 지킬 박사로, 내일은 하이드로.유지태는 9일 개봉한 최국희 감독(40)의 '스플릿'에서 철종을 연기한다. 과거 볼링 국가대표였지만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진다. 불행한 사고로 오른쪽 다리마저 다쳐 비관적으로 살아간다. 부스스한 머리와 귀에 착착 감기는 욕설. 떠난 사랑을 실감하지 못하며 봄날을 그리던 애잔함은 낄 틈이 없다. 새하얗게 머리를 물들이고 연두색 정장을 펄럭이며 거리를 활보한 '주유소 습격사건(1999년)' 페인트의 얼굴로 돌아갔다. 17년 만에 표현하는 밑바닥 인생. 유지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접근을 달리 했어요. 발음을 흐리고 발성에 힘을 뺐죠. 다른 촬영에서는 엔지였겠지만, 즐기면서 보여줘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비슷한 색깔의 '킹핀(1996년)'에서 우디 해럴슨(55)도 그렇게 연기하거든요. 그래서 색다른 매력을 전하죠."
영화 '스플릿' 스틸 컷
시나리오 속 철종은 어둡다. 세상과 단절돼 시종일관 침울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하다. 빈틈도 많다. 조금만 건드려도 상흔을 보인다. 유지태가 주장해서 다른 색깔의 옷을 걸쳤다. "성공보다 새롭게 도약할 계기를 갈구하는 인물이에요. 히피가 떠오르더라고요. 아픈 기억은 남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이요. 누구나 인생에서 상처를 받고, 그걸 감추며 살잖아요. 철종은 그게 드러나도 거리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설령 희화화되더라도 자유를 갈망하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죠."그의 결단은 매번 적중하지 않았다. '봄날은 간다(2001년)', '올드보이(2003년)' 등으로 명성을 쌓았지만, 이후 많은 작품에서 흥행 참패를 맛봤다. 특히 2014년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는 100억원 이상이 투입됐지만 관객 5만514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그야말로 유지태를 '스플릿(볼링에서 몇 개의 핀이 쓰러지고 나머지 핀이 띄엄띄엄 서있는 상태)'으로 내몰았다. 그와 닮은 철종은 자폐증을 앓는 영훈(이다윗)과 볼링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새롭게 나아간다. 유지태는 드라마 '굿 와이프'에서 이태준 검사를 섬세하게 그려 재기의 발판을 놓았다. 장창원 감독의 '꾼'을 촬영하는 한편 올드보이를 통해 얻은 인지도를 앞세워 미국과 캐나다 시장을 두들긴다. '1박2일' 등 TV 예능프로에도 얼굴을 내민다.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그만이죠. 허술한 면이 드러나도 스크린 속 인물에까지 영향을 주진 않을 거예요. 열심히 활동하니까 오히려 더 많은 호응이 따르겠죠."
배우 유지태
유지태는 바삐 활동하는 틈틈이 시나리오를 쓴다. 이미 단편 세 편을 연출하면서 감각을 익혀 2012년 '마이 라띠마'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2년간 써온 '안따이' 시나리오를 탈고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86)나 기타노 다케시(69)처럼 연출과 연기를 병행할 거예요. 배우는 연기만 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요." 그는 사회의식이 반영된 영화에 관심이 많다.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할 때부터 집단무의식, 부조리 등을 다루고 싶어 했다. 스크린 밖에서도 꿋꿋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 지난달 26일 부산지방법원을 찾아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용관(61)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을 응원했다. 이어진 집행유예 선고에 그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그게 제 방식이에요. 훨씬 강력하죠."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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