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직전 세계 7위서 세계 17위로 추락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국내 1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의 몸집이 법정관리 직전 세계 7위에서 세계 17위까지 밀렸다. 해양강국의 꿈을 향해 5대양 6대주를 누비던 국적 선사 한진해운은 격랑을 넘지 못하고 40년 만에 난파할 운명에 놓였다. 9일 해운통계 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한진해운 컨테이너 선복량은 32만5558TEU(1TEU=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대)로 세계 순위 17위를 나타내고 있다. 법정관리 직전 세계 7위에서 한달여만에 10계단이나 추락한 것이다. 법정관리 이후 화주가 한진해운 선박에 선적 자체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계 순위 하락은 계속될 전망이다. ◆선대 반토막…해외선사 반사이익= 하역을 마친 한진해운 선박들이 선주 등 채권자에게 즉시 반환되면서 선대 규모도 급속히 쪼그라들고 있다. 현재까지 반선이 완료됐거나 반선을 통보한(예정된) 컨테이너선은 총 51척(5일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선박 97척의 53%에 달한다. 또 장기연불로 매입한 선박에 대해서도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계약 해지를 요청한 상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8년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진해운 선박이 시장에 풀리면서 업황 악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설상가상으로 해외 선사들은 한진해운 물류대란으로 떨어져 나간 물량을 흡수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세계 1,2위 선사인 머스크와 MSC는 한진해운 물량을 흡수하기 위해 태평양항로 신규 서비스를 개설했다. 시장에서는 운임 상승으로 올해 2분기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던 머스크가 올해 순이익이 최대 7억6000만달러(약 8453억원)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초·최대 국적선사의 40년 영욕史= 1977년 공식 출범한 한진해운은 정부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선사인 대한선주를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1년 앞서 설립된 현대상선과 함께 국내외 터미널을 개장하거나 선사 인수합병을 하며 양대산맥으로 해운산업을 일궈냈다. 한진해운은 1996년에는 한국 최초로 세계 최대형, 최고속의 5300TEU급의 컨테이너선을 취항해 주목받았고 해운업이 호황이던 2000년 초반까지도 5750TEU급의 컨테이너선을 잇달아 인수하며 순항했다. 하지만 2008년 장기불황이 찾아오면서 위기가 드러났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2009년 전세계 해상 물동량은 전년대비 4.5% 떨어졌다. 전례없는 낙폭이었다. 이후 전세계 해상 물동량과 운임은 긴 하락세를 그려왔고, 해운산업 전체가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2008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던 양대 해운는 2009년 1조5079억원의 적자를 냈고 그렇게 8년을 버티며 부채는 쌓여갔다. 양대 해운사의 부채는 11조2679억원(1분기 말 기준)까지 불어났다. 반면 이 기간 해외 선사들은 수조원 규모의 정부지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자국 선사 코스코에 108억달러 신용조달을 지원했고, 일본 정부도 2011년부터 자국 해운사들이 이자율 1%의 초저금리로 10년 만기 회사채 발생할 수 있도록 지원을 펼치는 등 선제적으로 나섰다. 독일정부는 자국 선사 하팍로이드에 18억달러 규모 지급보증을 서줬고, 함부르크시는 7억5000만유로 현금지원을 펼치는 등 정부와 지자체에서 자국 해운사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돈을 쏟아부었다. 결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해외 선사들의 출혈경쟁 속 한계에 놓인 한진해운은 지난 5월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정부와 채권단은 구조조정 원칙론을 내세우면서 자금 지원 불가 결정을 내렸다.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한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가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다. ◆'해양강국'의 꿈 '해운악몽'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바다의날 축사에서 "창조경제의 시대를 맞아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대한민국을 진정한 해양강국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때"라고 격려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에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선출됐을 때도 "해양강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인 쾌거"라고 축하했다.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구호처럼 내걸었던 '해양강국'의 꿈은 이제 옛말이 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구호처럼 내걸던 해양강국의 꿈은 우리 해운사들이 꿈꿨던 해운강국의 꿈과는 달랐던 것 같다"면서 "한진해운이 생사에 기로에서 헤매고 있지만 해양강국을 외치는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산업부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