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화 KEB하나은행 PB사업본부 부동산센터장.
A씨는 최근 생전 처음 보는 통지서를 받았다. 법원이 보낸 것이어서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급히 뜯어보았다. 읽어본 A씨는 당황스러웠다.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경매가 진행되었으니 본인에게 채권이 있다면 그 내용에 대하여 권리를 신고하고 배당을 요구하라는 내용의 통지서였던 것이다. 경매 얘기는 여러차례 들어본 경험이 있지만 막상 본인이 그런 일에 부닥치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한 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내부 인테리어 공사까지 마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장기 거주하겠다는 목적에서 세입자임에도 과감하게 투자한 터였다. 최대한 오래 거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뽷겨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입이 바싹 마른 A씨는 지인을 통해 전문가를 소개받았다. 그 전문가한테서 자문을 받은 핵심내용은 이랬다. "경매가 진행되면 더 이상 전세로 계속 거주할 수 없다. 낙찰이 되면 집을 비워 줘야 된다. 권리신고를 하지 않으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법원에 권리신고와 함께 배당 요구도 해야 한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였다. 불안한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그는 지체없이 법원을 찾았다. 계속 거주하기 위해 경매에도 참여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낙찰받지는 못했고 집주인은 바뀌었다. 이 상황에서 A씨는 과연 잘 대처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는 애석한 일이 됐다. 오래 살고 싶었지만 새 집주인의 요구가 있으면 더 거주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A씨는 이미 전입신고를 하고 전세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아놓았다. 경매에 부쳐졌을 경우 필요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함께 갖추고 있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가 희망대로 계속 거주하고자 했다면 권리신고만 하고 배당요구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욱이 권리신고를 하지 않았어도 계약기간까지 거주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히 존재했다. 직접 낙찰받으려 했다면 아무런 신고를 하지 않고 입찰에 참여할 수도 있었고, 이렇게 하면 오히려 경쟁자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더 쉽게 물건을 낙찰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중에서야 문의를 해온 A씨는 낙담했다. 최대한 유리한 방향을 찾으려고 했지만 되돌리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미 낙찰이 돼 주인이 바뀐 상태이고, 낙찰을 취소시킬 만한 사유도 없었다. 결국 많은 돈을 들여 투자한 전셋집에서 나와야 하는 결과에 직면했다. A씨는 나중에야 처음 자문받은 전문가의 이력을 확인해봤다. 그제서야 사태가 잘못될 수밖에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전문가는 법률전문가는 맞지만 경매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법률전문가라는 이력만 무턱대고 믿고 의존한 결과였다. 누구나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진짜 선수'인지 '무늬만 선수'인지 가려내는 안목이다. 재산은 물론 건강과 같은 중요한 사안과 관련한 결정할 때는 한 곳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전문가도 전문가 나름이기 때문이다.양용화 KEB하나은행 PB사업본부 부동산자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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