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LG전자 H&A사업본부 사장…'고졸 신화' 뒤 인내·집념, 다시 원대한 꿈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최소한 고등학교는 나와야죠." 형들의 간곡한 얘기에 아버지 마음도 흔들렸다. 일본에서 도자기를 배운 아버지는 막내아들에게 가업(家業)을 물려주려 했다. 학력 은 중졸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막내아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음을 졸였지만 형들의 설득에 힘입어 고교 진학에 성공했다. 아버지가 마음을 돌린 이유도 도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서울 공고 요업(窯業)과에 진학하는 줄 알았지만 아들은 용산공고 기계과에 진학했다. 도자기공이 될 뻔했던 주인공, 조성진 LG전자 H&A(가전)사업본부 사장의 운명을 바꿔놓은 순간이었다. 오는 26일이면 LG에 입사한지 40년이 된다. 고졸 출신으로 입사해 사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조성진 LG전자 사장
아버지 몰래 기계과에 다니는 데 성공했지만 1년 만에 탄로가 났다. "당장 고향에 내려오라"는 아버지의 불호령은 예견된 결과였다. 고교생 조성진은 고향에 돌아와 '불가마'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씩 불 앞에 머무르며, 도자기 탄생의 과정을 지켜봤다. 잘 구워진 도자기, 흠집이 난 도자기를 보며 제품 완성도의 중요성에 대 해 눈을 떴다. 그 과정에서 배우게 된 인내, 집념, 노력, 열의는 조성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조성진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누나 하숙집에 머물게 됐다. 그때 만났던 하숙집 주인은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양 원호 교수다. 조 사장은 양 교수 밑에서 여러 일을 도우며 ‘기계의 묘미’에 빠졌다. 청년 조성진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양 교수의 도움이 컸다. 조 사장은 이른바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 가전업계를 놀라게 한 ‘세탁기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 사장이 LG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 9월이다. 금성사(현 LG 전자)에 입사한 조성진은 당시 대세였던 선풍기, 밥솥 제품이 아닌 세탁기를 담당하게 됐다. 조성진은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세탁기 분야에서 일본을 뛰어넘으려 했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승부사 조성진의 집념을 간과한 판단이었다.공장 2층에 침대와 주방시설을 마련한 뒤 숙식도 그곳에서 해결했다. 일에 몰두하면 독하게 몰아치며 성과를 내는 승부사 기질은 결국 DD(Direct Drive) 모터 개발로 이어졌다. LG전자 세탁기가 일본을 넘어 '세계 1등'으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세탁기 도사' 조성진은 이제 LG전자 가전부문을 책임지는 위치에 섰다. 그는 8억6400만원의 연봉을 받는 LG전자 간판이다. 조성진의 '인생 목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세탁기 세계 1등을 넘어 가전시장 전 부문 세계 1등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독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치며 집념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 때문일까. 청년 시절 ‘도자기 장인(匠人)’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 몰두했던 조 사장은 수십 년간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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