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슬픈 수첩 - 18일 타계한 故이호철 작가를 추억함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누렁이도 오후 뙤약볕이 버거웠을까. 뉘였던 몸을 게으르게 일으켜 어슬렁거리며 느티나무 숲 그늘로 들어가는 9월. 경기도 고양시 선유리 154의 2번지. 소설가 이호철의 집필실은 다시 사람들로 북적였다. 2006년부터 이곳에선 매달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독회 행사가 열렸다. 1955년 데뷔작 '탈향'을 시작으로 '판문점' '서울은 만원이다'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 작가가 고른 작품들이 낭랑한 목소리를 타고 선유동의 고즈넉한 정적을 깨며 흐른다.
함경남도 원산 출생. 인민군으로 참전한 그는 겁이 나서 총을 쏠 수가 없었다. 그는 따발총을 버린 채 대열을 이탈했다가 국군에 포로로 잡힌다. 이 겁쟁이 인민군은 그러나 곧 무슨 이유에선지 풀려난다. 고향 원산으로 돌아갔으나 이듬해 혼자서 월남을 감행한다. 그가 싫었던 건, 체제가 강요하는 전쟁이었을까. 분단으로 돌연 총부리를 겨눈 어이없는 상황이었을까.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이 났을 때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철창 신세를 졌다. 북한엔 월남 때 두고온 열 살 아래의 누이동생이 있다. 느티나무 숲 독회행사를 기록해둔 노트가 '소설 독회록 선유리(민병모 분단문학포럼 대표가 정리했다)'라는 책으로 발전했다. 독회는 2010년부터 단편소설 페스티벌로 커졌다. 작가도 여러 명 등장하여 독자와 함께 하는 문학축제가 됐다. 2011년에는 이호철 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올가페드로씨가 강연을 하기도 했다. 강연 제목은 '몰랐던 한국의 비극'. 전란의 체험은 이 느티나무숲에서 하나의 분단문학 문화로 무르익었다. 이호철은 1988년 선유동에 들어와 지금껏 살아왔다. 그가 이곳에 머문 것은 고향 원산을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었고, 또한 분단의 현실을 안고 살아가는 '소설과 같은 내면을 지닌 곳'인 까닭도 있었다. 생채기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우거진 자연의 역설을 바라보며, 문학적 성찰의 깊이를 더해온 곳이다. 어쩌면 그가 느티나무 한 그루인지 모른다. 끝없이 흔들려온 한반도의 분단 고통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그 아픔과 함께 굵어져온 거목 한 그루. 그 꿋꿋한 나무는, 18일 뇌종양으로 84년의 생애를 닫고 고요히 눈을 감았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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