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한 미래 생각하며 현재를 희생하는 그들
9일 오후6시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에서 수업이 끝난 공시생들이 저녁을 먹으러 가고 있다. 사진=금보령 기자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문제원 기자]"어제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추석 때 안 내려 오냐고 물으셨어요. 내려가기 불편하고 공부도 해야 하니까 안 가겠다고 했는데 말씀은 안 하셔도 서운하신 것 같았어요."9일 저녁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에서 만난 연모(23)씨의 말이다. 대구에서 혼자 왔다는 그는 내년 3월에 있을 경찰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 중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찾은 노량진 고시촌은 학원 수업이 끝난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들로 붐볐지만 추석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몇몇 학원 앞 '추석특강' 홍보물들이 그저 추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한 공무원 학원 홍보물에는 연휴 시작인 14일부터 18일까지 추석 특강이 진행된다고 쓰여 있었다. 수업은 한국사·행정법 등 과목별로 오전9시에 시작하는 것부터 오후10시30분에 끝나는 것까지 다양했다. 수강료는 한 과목당 1만원. 5~8과목을 들으면 5만원이다. 이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다른 공지의 조회수는 많아야 3000정도인데 비해 '2016년추석특강안내' 글은 이미 조회수 1만5000을 넘겼다. 추석특강에 대한 공시생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전형진(27)씨는 "추석 특강은 안 들어도 연휴 동안 자습실에서 공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사람들 봐도 주말이나 연휴라고 쉬지 않고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덧붙였다. 공시생들에게 추석 연휴는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기간이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응시자는 많아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6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시험 경쟁률은 평균 39.8대 1이었다. 공시생들이 고향에 못 내려가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학원 수업'이다. 많은 학원들이 추석 연휴 때 쉬지 않기 때문이다. 경남 창원에서 올라와 법원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모(27)씨는 "다니는 학원이 연휴 내내 쉬지 않고 수업을 한다"며 "수업을 빠지면서 굳이 내려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서울에서 공부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체력과 시간 낭비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에 산다는 김모(25)씨는 "친척들 보러 시골 내려갔다 오면 왕복 7시간 걸리는 데다 차 안에만 있어도 체력 소모가 크다"며 "차라리 교재 한 장이라도 더 읽는 게 빨리 합격하는 데 도움된다"고 말했다. 김씨 옆에 있던 송모(25)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골 내려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 친구 얘기 들으니까 자습하는 게 낫겠다"고 얘기했다. 부모들은 이런 공시생들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소방 공무원 준비를 하는 또 다른 김모(28)씨는 "집이 제주도인데 이번 추석 때 못 내려간다고 부모님께 전화 드렸다"며 "부모님이 '추석을 같이 보내고 싶지만 그래도 빨리 합격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씀하셨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공시생들은 대부분 내년 봄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시험까지 6개월 이상 남았지만 합격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자꾸 노량진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4년째 공시생이라는 손모(29)씨는 "합격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희생하는 거다"라며 "합격하면 당연히 추석 때 부모님이나 친척들 뵈러 가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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