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김영란법, 편법도 유명무실화도 안 된다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몇 년 전, 굴지의 국내 제약사 영업팀에 취업한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며 핼쑥한 얼굴로 찾아왔다. 자신이 담당하는 병·의원 의사 중 과도하게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부당한 부탁까지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팀장은 참으라고만 했단다. 외국계 제약 회사로 이직한 후 그 제자는 ‘영업이 체질’이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지인들은 앞으로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한결 나아지겠다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 기반의 유통회사 코스트코는 지방에 지점을 열 때 대관업무와 관련, 어려움을 종종 겪었다. 미국 본사의 엄격한 윤리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담당 공무원과 식사 한 번 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제 9월28일이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이 발효된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약 200만명,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최대 400만명이라고 한다.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 이 법의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 법의 성공 여부는 실행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던 만큼이나 불확실하다. 법이 실행되기도 전에 개정 논의가 이루어지고,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정이 났지만 여전히 ‘위헌 소지’를 논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이 법을 통해 ‘기업의 윤리경영과 사회 주체들의 공정거래를 촉진하여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실효성은 거두지 못한 채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회적 비용만 치르고 뒷걸음질 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대응이다. 요즘 사람들이 모이면 김영란법을 피하는 ‘편법’ 아이디어가 난무한다. 기업이 접대하고 싶은 대상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접대를 할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골프장에서 각자 계산을 하게 한 후 현금으로 사후 지급하는 방법, 게임비를 두둑하게 제공하여 각자 골프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가져가는 방법 등이다. 물론 그냥 우스갯소리로 한 얘기들일 것이다. 설마 이런 푼돈에 이름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에는 혼란이 따르고, 문제점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편법을 최대한 삼가면서 ‘법의 취지’를 살리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첫째, 기업의 윤리경영이 개선되고 공정거래가 활성화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접대 비용’으로 쓰이던 자금은 부가가치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투자될 것이다. 또한 사회적 마찰 비용을 줄여주는, 중요한 사회적 자원인 ‘신뢰’가 구축될 것이다. 둘째, 글로벌 시장의 인정과 평가를 받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본사의 윤리규정과 한국의 관행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던 글로벌 기업은 이제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평가할 것이며, 한국 기업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키는 기업’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회지도층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유명무실해질 경우 청년들과 서민층은 사회지도층을 더욱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권에서 기존 관행대로 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혼란과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보완’을 핑계로 법을 난도질하지 말기 바란다.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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