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 우리 사회 1% 기득권층들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잇따르는 법조인 비리 소식이 온 국민을 허탈감에 빠뜨리고 있다. 법조인 ‘전관 예우’는 이미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하다. 심지어 ‘으레 그러려니...’하고 무심코 넘기는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2016년에 드러나는 그들간 금전 거래 액수는 당혹감을 불러 일으킨다. 전직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공금으로 도박을 일삼은 기업가의 죄를 덮어주는 로비성 수임료로 100억원을 받았고, 전관 예우를 활용한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4년간 수임료로 22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보다 더 놀라운 소식은 10년차 검사’시절(2005년) 기업가 친구로부터 증여 받은 주식으로 120억원대의 대박을 터뜨린 일과, 급매 광고까지 내야 했던 부동산이 ‘부장 검사’사위 덕분에(2011년) 130억원대의 웃돈(?)까지 붙어 매매됐다는 의혹이다.1인당 국민 소득이 약3100만원임을 감안할 경우, 1억원은 국민 한 사람이 3년간 소득을 한 푼도 안쓰고 더해도 채울 수 없는 거액이다. 그런데 개인 간 거래에서 수십 억, 수백 억이 오가는 걸 보면 법조 권력이 관장할 수 있는 금력의 범위는 일반 국민의 상상 범위를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인 모양이다. 거액을 불법으로 주고 받는 법조인을 바라보는 99% 국민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하지만 특히 분노심을 자극하는 상황 중 하나는 그들이 한결같이 모든 의혹에 대해서 초지일관 거짓말로 진실을 은폐하려 든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양파껍질 벗겨지듯 죄목이 한 가지씩 드러나면 이때부터는 끊임없는 말 바꾸기로 또 다른 거짓말을 양산한다. 그들의 기준에서는 ‘들킨 죄’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회 1%에 속하는 기득권층에 속하더라도 법조인의 비리와 거짓말은 특별한 사건이다. 정권 쟁취가 목적인 정치가나 이윤 창출에 생존을 거는 기업가와 달리 법조계는 ‘공익을 대표’해 정의와 인권, 그리고 범죄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검사 선서에서 밝히듯 ‘불의를 걷어낼 용기와 약자를 돌보는 따뜻함,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함과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름’ 등을 실천하지는 못하더라도, 국민들에게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거짓말로 일관하는 모습만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100%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거짓말을 엄중한 죄로 여기는 유대인들도 이미 지불한 물건에 대해서 ‘소중한 물건이니 잘 쓰라’고 하거나, 결혼한 친구에게 ‘부인이 미인이니 잘 살아라’고 하는 식의 덕담용 거짓말은 허용한다. 또 악인에게 쫓기는 사람을 감춰준 뒤 추격자에게 다른 방향으로 도망갔다고 하는 식의 거짓말 역시 모든 문화에서 통용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도덕적으로는 범죄 행위이며 의학적으로는 초자아(超自我)가 무너진 치료가 필요한 병(病)으로 분류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인간의 마음 속엔 ‘본능’과 이를 도덕·양심·윤리 등으로 견제하고 지키는 ‘초자아’, 현실에 대한 분별력을 담당하는 ‘자아’등 세 요소가 공존한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이 셋이 균형을 이룬다. 예컨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 하고 싶은 충동이 일더라도 초자아가 적절하게 작동해서 욕망을 억누른다. 반면 정신이 병든 사람은 본능 충족을 위해 도덕과 양심을 저버리고 거짓말을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적인 문제까지 초래하는 거짓말을 한 사람은 병든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이며 중요한 업무 수행 이전에 건강한 정신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지금 법조계는 특별수사팀을 비롯, 수많은 법조인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된 전직·현직 동료들의 잘못을 심판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일종의 법조계 자체 정화 능력이 심판대에 오른 셈이다. ‘법 앞에서만이라도 평등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은 두고두고 그들의 결정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합당한지 여부를 심판할 것이다. 혹여 부당한 잣대로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 도출될 경우, 위대한 국민에 의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또다시 자국민에 의해 헬조선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이다. 명쾌하고 공정한 수사로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질 때, 헬조선을 외치는 우리 사회의 분노 에너지는 차츰 평화로운 상생을 위한 긍정 에너지로 변해갈 것이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소 실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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