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만리]역사를 바꾼 비밀작전, 시작은 저 불빛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인천 '팔미도 등대'-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결정적 역할

팔미도 등대(앞쪽 작은등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힌 등대다. 1903년 불을 켠 후 무려 100년 동안 불을 밝히다가 퇴역했다. 2003년에 새 등대가 세워졌다. 팔미도 등대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인천관광공사 제공]

유람선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팔미도와 등대. 연안부두에서 45분이면 팔미도에 닿는다. <br />

옛 등대 사무실의 모습을 보존한 곳.

팔미도 유람선에서 바라본 고층빌딩이 즐비한 송도국제도시

팔미도 둘레길

인천상륙작전 월미도 점령 기념탑. 상륙작전 당시 월미도를 차지하기 위해 분투한 참전용사들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가장 먼저 연합군이 도착한 그린비치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 됐습니다. 한 달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성공확률 5000분의 1,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을 말입니다. 하지만 믿는 게 있었습니다. 미군과 국군 그리고 민간인들로 구성된 특공대들의 활약입니다.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1950년 9월 14일. 드디어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켈로 (KLO, 대북첩보부대)부대 특공대는 팔미도에서 북한군과 교전 끝에 등대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45분 등대에 불을 밝힙니다. 맥아더 사령관은 불빛을 확인하고 작전 개시 명령을 합니다. 오전 6시, 연합군과 함대 261척은 인천 탄환을 위해 육지로 향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곳이 '팔미도(八尾島)'입니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km 떨어져 있는 작은 섬입니다. 모래로 연결된 두 섬이 마치 여덟팔(八) 자 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팔미도는 최근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힌 등대로 더 유명합니다. 그 역사는 무려 100년을 훌쩍 넘깁니다. 일제에 의해 완공돼 오욕과 고통의 시간을 지켜본 등대지만 한국전쟁에서 전세를 바꾸는 승리의 불빛을 쏘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6주년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으로 관심이 높아진 인천 팔미도를 찾았다. 106년간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으로 있다 2009년 개방된 무인도다.

팔미도 유람선

인천항 연안 여객선터미널에서 팔미도행 유람선을 탔다. 섬까지는 45분 남짓 걸린다.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 섬 여행에 3시이면 된다. 유람선은 천천히 수면을 미끄러지며 바다로 향한다. 항구와 고층 빌딩이 즐비한 풍경을 벗어난다. 바다 위에 유려한 곡선을 긋고 서 있는 인천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바다를 가로질러 끝없이 이어진 다리가 장관이다. 총 연장 21.38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다. 배가 통과하는 주탑 높이가 238.5m다. 63빌딩 높이에 육박한다.뱃길은 지루하지 않다. 유람선 3층 전망대로 오르자 드넓은 바다 풍경이 바람과 함께 밀려온다. 배와 함께 출발한 갈매기가 팔미도에 닿을 때까지 따라온다. 모두 새우깡 맛에 길들여진 갈매기다. 과자 하나를 손에 쥐고 있으면 잽싸게 날아와 부리로 낚아챈다.

팔미도 등대, 옛 등대는 보존공사가 한창이다.

뱃머리 앞으로 머리에 하얀 등대를 인 '팔미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착장에 내리자 문화해설사가 등대와 섬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도보로 10분쯤 걸린다.정상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불을 밝힌 등대가 있다. 1903년 4월 만들어져 그해 6월 1일 첫 불을 켰다. 무려 100년 동안 불을 밝히다가 퇴역하고 지금은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퇴역한 등대 대신 2003년 12월에 새 등대가 세워졌다. 100주년 기념등대다. 이전의 등대의 등탑 높이는 7.9m에 불과한데, 새 등대는 26m의 훤칠한 키를 자랑한다. 등대의 불빛도 바다 너머 50㎞까지 나간다. 팔미도는 인천만이 바라다 보이는 군사적 요충지로 인천상륙작전 때 큰 역할을 했다. 상륙작전이 성공하려면 연합군이 월미도에 진입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팔미도 등대부터 점령해야 했다.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맥아더는 특공대인 '켈로 부대원'들을 투입한다. 이들의 임무는 9월 14일 자정에 등대를 밝히는 것이다. 켈로 부대원들은 각고의 어려움 끝에 등대를 점령하고 불을 밝힌다. 이로써 연합군이 팔미도 해역에 집결할 수 있었고, 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등대 가는 길에 작고 아담한 건물이 있다. 옛 등대 사무실을 보존한 것이다. 방에는 당시 사용하던 다양한 장비와 등대지기 마네킹이 있다. 이를 지나면 곧 '천년의 빛' 조형물이 나온다. 팔미도 등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가운데 등대 모양 조형물이 있고, 그 주위로 빛기둥 100개가 하늘을 향해 뻗어간다. 천년의 빛 조형물을 지나면 곧이어 등대 두 개가 나타난다. 왼쪽에 작은 것이 '원조' 팔미도 등대다. 그 뒤로 새 등대가 있다. 하지만 옛 등대는 현재 공사중이다. 등대를 감싸고 있는 철골이 볼품없지만 공사가 끝난 후 옛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서 있을 모습을 그려본다.

팔미도 등대 역사관

새 등대 건물 2층에는 팔미도 등대역사관인 디오라마 영상관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때 팔미도 등대 탈환 과정을 볼 수 있다. 등대를 향해가는 켈로 부대원들의 모습과 점등 후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 의자에 앉아 점등되기를 기다리는 맥아더 사령관 등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린다. 3층에는 국내외 등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등대도서관이 마련돼 있다. 4층 하늘정원 전망대에서는 서해를 굽어볼 수 있다. 맑은 날이면 실미도와 무의도를 비롯해 자월도, 영종도 등 서해에 있는 섬이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인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송도국제도시도 눈에 들어온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머리 위로 날아간다.

월미공원에 있는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산책 삼아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등대에서 나와 산책길로 든다. 울창한 소사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다 보면 몸과 마음에 상쾌해진다.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쉬엄쉬엄 울창한 숲길을 거닐다 보면 어느덧 선착장에 닿는다.'뿌우웅~~~~'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린다. 팔미도 등대가 아스라이 멀어진다.팔미도(인천)=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가는길=서울에서 가면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인천항 사거리에서 서해대로를 타고 연안 여객선터미널 팔미도유람선 선착장으로 가면된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금방이다. 팔미도 유람선은 하루 3회 운항한다. 주말, 공휴일에는 10시 첫 배가 출항한다. 12시30분, 3시. 요금은 왕복 2만 2000원.
△먹거리=월미공원 부근에 신포국제시장이 있다. 신포 닭강정(사진 왼쪽)과 공갈빵, 강정 등이 유명하다. 19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중국인들이 정착한 차이나타운(사진 오른쪽)에는 자짱면, 월병, 홍두병, 화덕 만두 등 이색적인 중국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볼거리=팔미도와 함께 하는 인천상륙작전 역사투어를 추천한다. 월미도 월미공원에는 연합군의 최초 상륙지점인 그린비치(인근에 블루비치, 레드비치 지점도 있다)와 당시 포격에서 살아남은 평화의 나무 7그루가 있다. 수령이 최소 70년에서 240년 이상 된 나무들이다. 월미 전망대에 서면 인천항을 비롯해 360도 파노라마 바다전망을 볼 수 있다. 해군첩보부대 충혼탑과 한국최초의 이민사를 담은 한국이민사박물관도 있다. 1888년 세워진 국내 최초 서구식 근대공원인 자유공원에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에는 영화 '인천상륙작전' 팔미도 등대 세트장이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차이나타운, 개항장 문화지구, 답동성당, 한국근대문학관 등이 주변에 몰려 있다. 인천 중구는 해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기리기 위해 오는 9월 9일부터 11일까지 월미도 일원에서 '인천상륙작전' 월미축제를 개최한다. 해군이 직접 선보이는 상륙작전 해상 재현을 비롯해 거리 퍼레이드, 문화공연, 콘서트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월미공원에는 인천 상륙작전 당시 포격에서 살아남은 평화의 나무 7그루가 있다. 수령이 최소 70년에서 240년 이상 된 나무들이다.

월미공원 한국의 정원

월미공원 한국의 정원에서 익어가는 조롱박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진부 여행전문 조용준기자 jun2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