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013년 38회 연재 조광희씨, 3년만에 투병기 올 5월 재개…그를 만나보니 '심적 투병 더 아파'
'쿨한 백혈병 환자' 투병기 쓴 조광희 씨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스물여섯 청년 조광희 씨는 백혈병 생존자다. 2011년 4월. 스물하나, 육군 상병으로 갓 진급했을 때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암 병동 생활을 시작한 후 2년간 그는 '쿨한 백혈병 환자'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을 통해 투병기를 연재했다. 이후 3년간 쓰지 않다가 지난 5월 '생존신고'를 썼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생이 됐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조 씨를 만났다.조 씨는 온라인 상에서 유명한 '쓰니(글쓴이를 이르는 온라인 커뮤니티 은어)'다. 2011년 5월 백혈병 판정을 받은 지 3주 만에 투병기를 쓰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조 씨는 버릇처럼 썼다. 38회 연재된 투병기는 모두 283만 번 이상 읽혔다. 수십 차례 베스트 게시글인 '오늘의 톡'으로 선정됐다. 조 씨는 "3년 만에 다시 글을 쓰는데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놀랐다. 유명인들도 쉽게 잊는데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 쓰던 사람을 아직 기억하다니 재밌고 즐겁다"고 말했다.
조광희 씨가 네이트 판에 쓴 '생존신고'
백혈병을 유쾌하게 그렸다. 조 씨는 자신을 '조백혈병'이라고 소개하며 병동 생활의 이모저모를 썼다. 링거액과 항암제를 주입하는 고무관의 일종인 '히크만 카테터'. 독한 항암제가 링거를 맞던 팔의 혈관에 주입되면 혈관을 삭히거나 녹일 수 있어 히크만 카테터를 쇄골 밑 정맥에 연결한다. 암 환자의 아픈 상징도 "거치대 바퀴가 홀수면 균형 잡기 힘든 듯. 넘어져서 히크만 카테터 빠질 뻔ㅋㅋ" 등 일상처럼 묘사했다. 암 병동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그의 글을 쉽게 읽었다.
병동 생활의 절절함도 녹아 있다. 작별인사란 글에서 조 씨는 "장난삼아 '난 절대 죽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했던 어느 날, 간호사선생님은 말했다. '난 널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직업이라기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몸부림에서 익혀진, 기술을 뛰어넘은 무언가"라고 썼다. '쿨한 백혈병 환자'의 투병기는 암 환자들, 예비 간호사 등 수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조 씨는 투병기 연재를 '축제'로 기억했다. 그는 "같이 슬퍼하거나 즐거움, 유쾌함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쿨한 백혈병 환자' 연재는 작은 축제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투병기를 그만 쓰게 된 것은 언론의 지나친 관심 때문이었다. 조 씨의 글을 본 한 일간지 기자가 병원에서 8시간 동안 기다렸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거절하자 기자는 "공개된 글을 인용해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광희 씨는 공개된 글을 모두 삭제했다. 현재 네이트 판에 남아있는 글은 이후에 쓴 글이다. 조광희 씨는 "아플 때 언론에 나오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하지 않았다. 글은 재미로 시작했고 병을 이기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변질될 것 같아 그만뒀다"고 했다.3년 만에 투병기를 다시 쓰게 된 이유는 '투병'이 계속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과 취업준비생으로서의 불안감이 '투병'을 연장시켰다. 조 씨가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는 1년 정도 기간이 남았다. 완치판정은 항암치료 이후 5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아야 받을 수 있다. "암은 재발하면 말기가 되요. 오히려 병원에서 나온 이후 심적으로 투병하는 느낌이이에요. 내일 갑자기 재발하지 않을까하는 공포감. 조금이라도 멍이 들면 '다시 병이 든 건가'라는 걱정이 들어요. 취업을 해야할 때가 됐지만 투병 후 약해진 체력 때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한나절 근무를 하면 녹초가 되는 정도에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이 불안함과 공포를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공동체가 사라졌다고 조 씨는 느낀다. 병원에서는 함께 아픈 사람들과의 유대감이 있었다. 그는 "점점 사람들간의 유대관계나 공동체가 약해진다고 느낀다. 한국사회도 백혈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아파도 스스로 치료할 수 없는 백혈병과 '헬조선'은 닮았다"라고 했다.조 씨에게 투병기 연재는 다시 시작된 '치료'다. 지금 연재하는 글에는 자신의 일상을 담거나 암 병동 방문기 등을 쓴다. 그의 글에 달린 댓글은 유난히 길다. 댓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자신의 아이나 조카 사진을 올리는 이도 있다. 조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댓글을 통해 자신 드러내는 경우는 적다고 생각한다. 내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공유된다는 게 큰 기쁨이다"라고 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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