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비 맞는 사람/이덕규

   들판 한가운데서 비를 만났다 피할 곳이 없었다 사나운 비였다 굶주린 비였다 죽일 듯이 오는 비였다 잘 만났다 제대로 걸렸다 작정한 듯 내리꽂는 비였다 속수무책 젖었다 속속들이 젖기 시작했다 빗물이 맘 놓고 몸 구석구석으로 들어왔다 깊숙이 들어왔다 마침내 지금껏 단 한 번도 젖지 않은 자리가 젖었다 흥건히 젖었다 눈에서 몸속을 한 바퀴 돌아 나온 뜨거운 빗물이 흘렀다  좀체로, 걸려들지 않더니 실로 오랜만에 사람이 걸려들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공감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본성이 아니라 부단히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아이들을 보면 가끔 인간이란 참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개미도 매미도 잠자리도 나비도 아이들 손에 들어가면 끝이다. 아이들은 모른다. 개미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그리고 잠자리 또한 우리와 동일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모르니까 그러는 거다. 그러니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이미 배울 만큼 배웠고 알 만큼 아는 성인도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모른 척하기 일쑤다.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정말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다면 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이다. 오로지 그런 사람만이 사람이다. 오늘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채상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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