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마라의 죽음과 생식기

허진석

쉰 살 난 혁명가가 칼에 맞아 죽었다. 장 폴 마라. 암살이다. 스물다섯 살 먹은 여성 샤를로트 코르도네가 조리할 때 쓰는 칼로 가슴을 찔렀다. 마라는 즉사했다. 1793년 7월13일의 일이다.  마라는 왜 죽었나. 그는 원래 의사인데, 항상 절대권력에 비판적이었다. 1789년 7월 혁명이 일어나자 '인민의 벗'이라는 신문을 발간하고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었다. 칼럼을 써서 개혁을 외쳤다. 그는 민중과 급진적인 자코뱅당을 잇는 다리였다. 자코뱅당이 권력을 장악하자 마라는 조르주 당통,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와 혁명의 중심에 섰다. 자코뱅당은 반혁명 세력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공포정치는 적을 양산했다. 중산층의 지지 속에 온건정책을 주장한 지롱드당이 보기에 마라는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다. 코르도네는 지롱드당을 지지했다. 지롱드당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는 편지를 들고 마라를 찾아갔다. 마라는 피부병을 앓았다. 늘 욕조에 앉아 일했다. 코르도네를 맞은 곳도 욕실이다. 화가 장 자크 다비드가 이 사건을 그렸다. '마라의 죽음'. 마라는 식초에 적신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숨을 거두었다. 욕조에 괸 물은 핏빛이다. 바닥에 피 묻은 칼이 나뒹군다. 마라는 펜을 놓지 않았다. 미술가들은 이 그림에서 순교자, 십자가에서 막 내려진 예수를 본다. 죽은 이의 표정에서 엑스터시를 발견한다. 이상에 생애를 바친 남성의 최후다. 미술평론가 유경희는 매혹적인 질문을 한다. "또 하나의 암시! 그 (가슴의) 상처는 어쩌면 순교한 남성의 육체에 각인된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성적으로 매혹된 순교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다비드가 마라를 예수처럼 그렸다면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 역시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와 물이 쏟아져 나온 그 곳. "마야부인의 잠은 아주 얕았으리/(중략)/룸비니 사라수 그늘 아래/가지를 잡아 고타마를 낳았으니/코끼리가 든 바로 그 자리/오른쪽 옆구리였다니/그곳이 어디인가/하느님 아담을 지은 후/배필을 마련하느라 슬쩍/갈빗대 한 자루 떼어 내신 곳/카우카소스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독수리에게 간을 찢기느라 헐린 곳/거룩한 아드님 십자가 높은 곳에서/창에 찔리어 물과 피를 흘린 자리일세."(졸시 '옆구리에 대한 궁금증' - '시작' 2009년 겨울호)  나는 알고 싶다. 인간에게 오른쪽 옆구리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여성의 성기가 있어야 할 곳이 원래는 옆구리가 아닐까. 마야 부인은 부처님을 옆구리로 낳았다. 부인에게 어떤 신체의 비밀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나 아담의 배필을 만들 때는 생식 과정이 없었다. 탄생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몸에 대한 궁금증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몸 이야기를 하겠다. 몸이 소재이자 주제다. 남루한 조각배에 독자 여러분을 싣는다. 어디로 흘러갈지,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구석구석 더듬다 보면 보일 것이다. 우주 한복판을 깊이 찌른 처녀의 비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가공할 생식기의 심연 속이라 해도 상관없다.  다음주에 옆구리 얘기를 조금 더 하겠다.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스포츠레저부 허진석 huhbal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