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기자
지난달 18일 서울 연지동 현대상선 본사에서 마크 워커(사진 오른쪽)와 김충현 현대상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다나오스, 나비오스 등 해외 컨테이너선주들과의 용선료 단체협상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던 현대상선의 '111일 드라마'는 사실 너무나 극적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숨은 주역들의 '결정적인 한수'가 운명을 갈랐다. 무엇보다 마크 워커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 워커는 국제금융과 기업채무 전문가로 관련 업무만 30년 넘게 해온 배테랑 변호사로,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정부의 채무조정의 길을 열며 우리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흥인장을 받았던 인물이다. 워커는 외부 법률자문으로 10여명으로 구성된 협상단을 이끌었다. '목표 인하폭'과 '협상 마감시한' 등 협상 포인트를 상대 선주들에게 모두 내보이면서 시작된 절대적으로 불리한 협상이었다. 30%에 이르는 인하폭에 대해서도 선주간 이견이 크게 엇갈렸고, 최후까지 포커페이스를 고수하는 선주들 22곳 사이에서 힘든 막판 조율 과정이 이어졌다. 지난달 18일 컨테이너 선주 5곳과 최종담판을 벌이려고 했지만 "선주간 인하폭이 다르다"며 항의가 쏟아졌고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듯 했다. 하지만 워커는 "협상은 이제 시작됐다"라며 해외 선주들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협상 원칙을 지켰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밀스타인 법률팀과의 팀워크가 없었다면 협상 타결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향후 해운동맹 편입도 순조롭게 될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협상의 일등공신인 마크 워커와 현대상선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에는 변양호 전 보고펀드 대표(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가 있었다. 변 전 대표는 행정고시 19회로 재경부에서 탁월한 능력과 소신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외환위기 당시 외채만기 연장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이력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 외채협상단으로 함께 활동했고, 현재 밀스타인 한국 자문역으로 있는 변 전 대표가 가교 역할을 하며 한진해운이 아닌 현대상선 협상팀에 합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대상선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한 현정은 회장도 '편지'로 숨은 조역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 회장은 영국 조디악의 에얄 오퍼 회장에게 '자신은 회사를 물러나지만, 현대상선을 도와달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난공불락'이던 조디악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냈다. 조디악은 전체 용선료의 70% 비중을 차지하는 컨테이너선주를 대상으로 한 단체 협상장에도 불참하는 등 가장 큰 난관으로 꼽혔다. 탁월한 논리와 철저한 준비로 마크 워커와 합을 맞춘 김충현 현대상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활약도 컸다. 촘촘한 역할 분담을 통해 마크 워커와 지근거리에서 합을 맞췄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가장 큰 난관이었던 용선료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정상화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이번 협상 결과는 자율협약 유지의 마지막 과제인 해운동맹 편입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상선이 해외 선주 22곳과 맺은 양해각서(MOU)는 용선료 21%를 인하하고 인하분의 50%(5400억원)는 출자전환, 나머지 50%는 2022년 이후 5년간 분할상환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연간 1500억원 가량을 절감하게 됐다. 현대상선과 선주들은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최종 계약을 이달말까지 마칠 예정이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