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과연봉제]모바일뱅킹 시대의 아날로그 '임금(賃金)'님

수익 줄어도 연공 서열따라 오르는 급여…은행 생존 위협하는 낡은 호봉제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성과연봉제가 금융권의 핫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도입의 총대를 맨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에서 "연공(年功) 서열, 획일적 평가 그리고 보신주의의 낡은 관행을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 금융에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미 9개 금융공기업은 도입을 마쳤다. 남은 건 민간 금융기업, 특히 각 금융지주사의 주요 계열사인 은행이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사용자협의회)와 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10일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를 핵심 골자로 하는 산업별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한다. 지난달 23일 노사가 처음 마주한 데 이어 세 번째 협상이다.금융권 성과연봉제의 핵심은 기존 지점 단위로만 이뤄지던 성과 평가를 개별 임직원 단위로 확산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개별 평가를 바탕으로 금융권 91.8%(2014년 기준)가 적용하고 있는 호봉제(근무 연한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제도)를 '성과주의 연봉제'로 바꾸는 과정이다. 임 위원장이 언급한 '보신주의 낡은 관행'도 바로 이 호봉제를 겨냥한 것이다.실질적 세부 평가안은 은행연합회가 외부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이르면 다음 달 내놓을 예정인 '개인별 성과평가 지표'를 가이드라인으로 한다. 이후 각 시중은행에서 조직 상황에 맞춰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 적용하게 된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금융권이 기존의 익숙한 지점별 평가와 호봉제를 버리고 '각자 역량에 따른 보상을 받는' 성과주의를 받아들이냐의 문제다. 이 기본 철학을 놓고 사용자협의회와 금융노조 측의 오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은행, 수익성 하락에도 인건비 해마다 늘어=국내 은행업은 이미 수년째 수익성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외국계ㆍ시중ㆍ지방 은행을 아우르는 국내 은행의 총이익은 2011년 47조7000억원(이하 연말 기준)에서 지난해 39조4000억원으로 최근 5년 동안 지속 하락했다.영업이익만 떼 놓고 보면 하락세는 더욱 두드러졌다. 2011년 19조에 이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7조6000억원에 그쳐 5년 새 60%나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핵심 수익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2.30%에서 1.58%로 꾸준히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반면 임직원 급여를 포함한 판매비와 관리비(판관비)는 계속 늘었다. 판관비는 2011년 20조에서 지난해 22조5000억원으로 총 2조5000억원이 늘었는데 이 중 급여 증가분이 80%(2조원)를 차지했다. 자연스레 총이익대비 급여비중도 18%에서 26.9%로 크게 늘었다.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은행이 수익성을 깎아먹는 동안, 호봉제에 근거한 급여는 산업 경쟁력과 관계없이 꾸준히 오른 셈이다.◆美 은행, '직무별 성과주의' 당연…호봉제 없어=금융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글로벌 경영컨설팅 전문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지난해 11월 10곳 이상의 미국 상업은행 근무자 총 2만7000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미국 상업은행 임금 관련 자료'에 따르면 미국 상업은행들은 대부분 '직무별 기본급'을 바탕으로 한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봉제 적용 사례는 없었다.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경우 20개 이상의 전문 직군제를 두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다. 정보기술(IT)ㆍ준법(Compliance)ㆍ고객서비스ㆍ지점영업ㆍ기업금융(Relationship)ㆍ포트폴리오ㆍ부동산 담보대출(Mortgage Loan) 등 직군 순으로 전체 연봉 중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낮아졌다. 바꿔 말하면 개인의 노력에 따라 역량발휘를 할 수 있는 직군일수록 성과급 비중이 높은 셈이다.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 담당 직군의 경우 기본급(42%)보다 오히려 성과급(58%) 비중이 높았다. 그 결과 같은 직군이라도 절대 임금액 기준 상하격차가 최소 1.5배에서 최대 9배까지 벌어진다. 웰스파고의 부동산담보대출 담당 직군 근무자의 성과급 비중은 총 연봉의 70%에 달한다.◆성과연봉제는 미래 은행업 위한 '생존 수단'=현장에서는 은행이 상호 경쟁을 넘어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장은 "수익이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호봉제를 비롯한 비용 구조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머무르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10년 뒤 은행은 이합집산을 거쳐 극히 일부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실제 외환위기 이전 25개 안팎이었던 시중 은행은 최근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하면서 현재 6개로 줄었다. 신한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 대부분이 올 상반기 신규 채용을 않아 '채용절벽' 우려도 커지고 있다.학계에서도 현재 비용구조로는 은행업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연공성이 강한 임금체계는 고도 성장기에나 적합한 패러다임"이라며 "현재와 같은 호봉제로는 금융시장의 전반적 변화를 고려할 때 지속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노조도 성과주의 임금 체계를 부정적으로 판단해 무조건 거부하는 대신 근로자 입장에서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을지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우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금융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선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금융부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