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역사·정서 담긴 이야기, 관객의 시선으로 이해'

나홍진감독 신작 '곡성' 출연한 日중견배우 쿠니무라 준

배우 쿠니무라 준[사진=이십세기폭스 제공]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배우 쿠니무라 준(61ㆍ일본)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지 않는다. 연기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의 자신감이 아니다. 모니터 확인은 감독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선을 긋는다. 그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그걸로 내 임무는 끝"이라고 했다. 나홍진 감독(42)의 신작 '곡성'에 출연한 쿠니무라를 10일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만났다. 인터뷰에 임하는 표정과 말투는 시종일관 여유가 넘쳤다. 한국에서 촬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미 미국, 이탈리아, 홍콩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리들리 스콧(79)의 '블랙 레인(1989년)', 쿠엔틴 타란티노(53)의 '킬빌'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쿠니무라는 왕성한 해외활동의 비결로 '오픈 마인드'를 강조했다. "영화는 대화로 풀어가는 작업이다. 말만으로도 부족한데 언어까지 다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방식을 고수하지 않는다. 항상 감독이 원하는 것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곡성에 접근하는 자세도 그랬다. 나 감독이 알몸 연기 등을 요구해도 주저 없이 "오케이"라고 했다. "속으로는 많이 망설였다. 관객에게 보여줄 만한 몸이 아니라서(웃음). 촬영 직전에 훈도시(일본의 성인 남성이 입는 전통 속옷)를 입는 설정으로 바뀌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배우 쿠니무라 준[사진=이십세기폭스 제공]

곡성은 평온한 농촌 마을에 외지인이 나타난 뒤 연이어 발생한 괴이한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마을 사람들이 이 모든 사건은 외지인 때문에 일어났다고 수군대는데, 쿠니무라가 이 외지인을 연기했다. 나 감독은 한국의 역사와 정서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소재들을 대거 차용했다. 결말도 뚜렷하게 그리지 않아 외국 배우가 연기하기에 까다로운 영화였다. 쿠니무라는 "다소 혼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열쇠를 찾았다"고 했다. "행위의 정당성을 이해하고 나니까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고 역할을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컷에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를 함께 조율한 나 감독은 철두철미한 연출로 유명하다. 웬만해선 타협을 하지 않아 영화인들 사이에서 촬영현장이 힘들기로 소문이 났다. 쿠니무라는 "한국의 현장이 정말 힘들구나 생각했는데, 나 감독의 현장이 그렇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며 웃었다. 그는 "과거 일본의 촬영장에서도 감독은 절대 권력자였다. 독재자가 나쁜 의미만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감독과 작업은 행운이었다. 다시 한 번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타란티노나 스콧 감독 못잖게 개성이 넘친다. 계속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푹 빠져들게 된다. 배우의 모습을 끌어내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영화를 보면서 '내게 이런 표정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줘서 감사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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