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확진 자 발생으로 짚어봐야 할 문제들
▲지카 바이러스와 관련해 인천공항이 소독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국내에서 22일 첫 지카 바이러스 확진 자가 발생했습니다. 브라질을 22일 동안 업무차 방문했던 L 씨가 현지에서 지카 바이러스 매개체인 모기에 물린 겁니다. L 씨는 현재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양호한 상태입니다. 실시간으로 교류가 이뤄지는 글로벌 시대에 그 어떤 나라도 감염병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감염병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항공, 선박, 열차 등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4월 중순부터 우리나라에는 모기가 왕성한 활동을 시작합니다. 지카 바이러스는 이집트숲모기가 매개체입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흰줄숲모기도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감염병은 '과도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늘 염두에 둬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않기 위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상태에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방어 시스템'이 있을 때 감염병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으로 홍역을 치른바 있습니다. L 씨의 사례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그곳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잠복기…입국장에서 모니터링 안 돼=L 씨는 브라질을 방문한 뒤 독일을 거쳐 지난 11일 우리나라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L 씨는 발열감시시스템 앞을 아무 이상 없이 통과했습니다. 발열감시시스템은 이상 고온을 보이는 승객들을 모니터링 합니다. L 씨가 입국할 때 발열감시시스템에는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지카 바이러스 잠복기였기 때문이죠. 잠복기에는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L 씨는 국내에 입국한 닷새가 지난 16일에서야 발열과 근육통이 나타났습니다. 이어 19일에 발진이 발생하면서 지카 바이러스에 대한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L 씨와 비슷한 사례는 앞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 발생국에서 입국하지 않고 제3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감시망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죠. 이와 관련해 정기석 질병관리본부장은 "지카 바이러스 발병국에서 입국하지 않고 우회해서 입국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동통신사와 해외 로밍 현황에 대한 데이터를 통해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탐지·방어시스템 다시 살펴야= L 씨는 두 차례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발열과 근육통이 있고 난 뒤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이때 병원 측은 지카 바이러스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지카 바이러스 탐지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죠. 브라질 여행력이 있는 L 씨를 의심하고 보건소에 먼저 통보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발진이 일어난 뒤 두 번째 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 측은 지카 바이러스 의심을 했고 보건소에 통보했습니다. 첫 번째 시기에서 '과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죠.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의심부터 하고 이후 대응했어야 했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탐지와 방어 시스템'을 보여줬습니다. ◆모기 활동시기 온다=4월 중순부터 우리나라는 모기가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지카 바이러스 매개체 가능성이 있는 흰줄숲모기도 날아다닙니다. 흰줄숲모기는 5~9월까지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나라 흰줄숲모기의 2015년도 트랩 인덱스(trap index) 값을 조사했는데 1트랩당 전체 모기 수는 1만4382마리였고 이중 흰줄숲모기는 482마리로 3.4%를 차지했습니다. 2014년도 전체 모기 1만6983 마리 중 356마리(2.1%), 2013년도 전체 모기 1만7964마리 중 71마리(0.4%)와 비교했을 때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5~9월 사이에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문 모기가 다른 사람을 물었을 때 감염 가능성입니다. 김길하 충남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현재 모기방제 작업을 하고 있는데 흰줄숲모기를 모두 박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모기 활동시기를 앞두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흰줄숲모기는 산 속과 항아리 근처, 폐타이어가 있는 곳에 많이 서식한다"며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문 모기가 다른 사람에게 옮길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감염자를 문 모기가 다른 사람에게 지카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은 적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최악의 상황'은 생각해야 합니다. ◆모기매개 전염병 대처는 80년대 수준=모기 등에 의한 감염병은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전문 시스템은 8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는 질병매개곤충과가 있습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곤충에 대한 감시와 분석을 하는 곳이죠. 질병매개곤충과는 현재 17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중 5명만 정규직이고 12명은 1년 단위로 계약하는 비정규직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80년대와 비교했을 때 바뀐 게 별로 없다"며 "지구온난화와 곤충매개의 질병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시스템 변화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규직 5명의 인원으로 감시하기에도 역부족이라는 것이죠. 연구개발(R&D)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습니다. 주영란 질병관리본부 질병매개곤충과장은 "글로벌화와 지구 온난화 등으로 곤충매개 감염병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며 "감시와 진단, 분석, 연구개발 등 입체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감시, 방제, 자원 등 세 분야로 나눠 전문화시키고 인력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카 바이러스 확진 자 L씨의 팔에 나타난 발진.[사진제공=질병관리본부]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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