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진료내역 표준화 안돼 과잉진료 멋대로…고삐 풀린 실손보험 체계
[아시아경제 강구귀 기자] 네일케어사 김 모씨(37)는 하이힐을 신고 가다 발목을 삐끗했다. 깁스를 하고 36일간 입원한 그녀의 병원비는 총 1110만원. 이 가운데 비급여 의료비가 1000만원에 육박했다. 병원은 김 씨가 깁스를 하고 입원을 할 때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더니 도수 치료를 권했다. 도수치료는 치료사가 손으로 검사하거나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108회에 걸친 도수치료비용은 청구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김 씨의 사례는 과다한 의료비 청구의 한 단면이다. 현행 법상 도수치료는 법정 비급여항목에 해당된다. 법정비급여로 등록된 항목들은 의료기관이 가격, 시행횟수 등을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보험사는 이에 대해 ‘무조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게다가 비급여항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심사기관의 심사는 받지 않는다.실제로 비급여 항목은 기준이 제멋대로다. 감사원의 ‘의료서비스 관리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총 1만6680개의 비급여 항목 중 명칭 등이 표준화돼 가격비교가 가능한 것이 1611개(9.7%)에 불과했다. 가격 차이도 크다. 955개 비급여 진료항목(2만5084건)의 병원별 가격차이가 평균 7.5배에 달했다. 추간판 내 고주파 열 치료술의 경우 병원별로 최소 20만원에서 최고 350만원으로, 병원간 차이는 17.5배나 됐다. 그렇다보니 비급여 의료비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비급여 의료비는 2009년 15조8000억원에서 2013년 23조3000억원으로 연평균 10.2%의 증가율을 보였다. ◆전문가 풀도 없는 비급여 표준화…“복지부만 바라보는 상황”= 하지만 비급여 표준화의 길은 멀다. 비급여 진료비용 현황조사가 가능한 의료법 개정안 제45조 2의 시행시기는 올해 9월 30일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비급여 진료비용을 조사·분석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병원 자체에서 하던 것을 복지부 주관으로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하지만 이 마저도 주기적 공개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전문가들은 진료내역 공개와 함께 비급여 진료내역의 표준화를 병행해야 국민의료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기관마다 비급여 진료내역을 공개하고 있지만 비급여 진료비의 명칭과 코드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이에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표준화팀을 만들어 비급여 진료비의 명칭과 코드를 표준화할 방침이지만 정작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전문가 풀도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높아져 가는 손해율...존립 흔들리는 실손보험= 국회예산정책처에 다르면 건강보험 비급여 의료비는 연간 약 23조3000억원 수준이다. 이중 실손 비급여 보험금은 2013년 기준 2조8787억원으로 전체 실손지급 보험금 4조2000억원의 68% 규모다. 이렇게 비급여 의료비로 지급하는 실손의료보험금이 매년 늘어나면서 보험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악화일로다. 2011년 손해율 109.9%를 기록한 후 ▲2012년 112.3% ▲2013년 119.4% ▲2014년 122.9% ▲2015년 상반기 124.2% 까지 악화됐다. 보험료로 100을 거둔 뒤 120을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뜻이다.손해율 악화는 고스란히 보험가입자에게 전가된다. 손보사 실손보험료는 2014년 평균 1.44% 오르는데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평균 14.17%나 올랐다. 보험사들이 손해율을 만회하고자 보험료를 올린 탓이다. 이 정도 상황은 실손보험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수준이다. 손해율 누적으로 상품 판매를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는 대국민 건강제도의 한 축을 위협한다. 결국 모든 피해는 대다수의 선량한 가입자에게 전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민·관 공동의 실손보험 정책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제기된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지난 1999년부터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의 심사·조정 등을 위해 의료·보험업계,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협의체인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또 급여의 의료행위·가격 등을 심평원에서 심사하는 것처럼 실손보험도 전문기관에 위탁심사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2013년 7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법개정을 통해 진료수가의 심평원 심사위탁 체계를 마련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급여 심사위탁 관련 사항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일정 수준의 관리가 가능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강구귀 기자 nin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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