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새 보금자리는 편안하십니까?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태백산본 부산기록관 새 전용사고 구축 완료..18일 환안 의식 개최

조선왕조실록 태백산본 환안還安) 의식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호랑이 사냥꾼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지켰다? 배우 최민식이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열연한 영화 '대호'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구 열강들과의 첫 격전지였던 강화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이다.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한 1866년. 당시 프랑스 함대는 군함 7척에 탑재된 대포만 10문에 달할 정도로 화력이 막강한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프랑스 군대와 맞설 책임자는 제주목사 출신의 양헌수였다. 당시 양헌수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 중인 전등사에 배수의 진을 치고 기습 작전을 구상했다. 사냥꾼 포수 20명이 섞인 부대를 앞세워 정족산성에 접근하던 적군을 깊숙이 유인한 후 급습해 대승을 거뒀고, 결국 겁을 먹은 프랑스 함대가 물러나고 말았다.이미 외규장각을 약탈한 프랑스군이었기에, 만약 양헌수 부대의 승리가 없었다면 결과는 뻔했다. 조선왕조실록 정족산본이 자칫 소실되거나 약탈될 위기를 간신히 넘기는 순간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때도 간신히 살아남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6월. 파죽지세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4대 사고 중 한 곳이 위치한 전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양 춘추관ㆍ충주ㆍ성주 사고가 모두 소실된 상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전주 사고마저 불에 탈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때 전주 사고를 지킨 주역은 손홍록ㆍ안의 등 지역 유생들이었다. 이들은 전주 사고에 있던 실록 64궤를 정읍 내장산 용굴암 등으로 옮겨 왜군의 약탈을 피한 뒤 1년 여 후 조정에 넘겨줬다. 이들 덕에 조선왕조실록이 온전히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외세의 침략 등 역사의 고비마다 수난을 겪어 온 조선왕조실록 태백산본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온도와 습도가 최적으로 조절되고 화재를 방지하는 맞춤형 전용서고에 입고된 것이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18일 부산기록관에서 태백산본 전용서고 구축 공사를 마치고 실록을 보관하는 '실록 환안(還安) 의식을 거행했다. 이 서고는 천정과 벽이 온도ㆍ습도를 조절해주고 곰팡이를 예방할 수 있는 오동나무ㆍ대나무 등으로 꾸며졌다. 화재에 대비해 전용 방화구역이 구축됐고 도난 방지를 위한 시설도 갖췄다. 실록은 조선 시대의 정치ㆍ외교ㆍ군사ㆍ풍속ㆍ과학ㆍ사상ㆍ도덕 등 각 방면의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망라돼 있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귀중한 역사 유산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선의 조정은 실록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오래 보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화재를 피하기 위해 깊은 산속 오지를 골라 사고를 지었다. 보관된 실록은 3년에 한번씩 꺼내 바람을 쐬주는 방법으로 훼손을 방지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하는 방법도 택했다. 초기엔 충주사고 하나만 있었지만 이후 전주ㆍ성주와 춘추관 등 총 4곳에 사고를 만들어 보관했다. 그러다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만 간신히 살아남자 사고 수를 5개로 늘렸다. 서울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사고가 설치됐다. 춘추관본은 인조 당시 이괄의 난때 소실됐지만, 나머지 4대 사고는 온전히 보관됐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 지배후 또 다시 큰 수난을 당했다. 오대산본은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됐다가 도쿄 대지진으로 대부분 소실된 후 2006년 일부만 돌려 받아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적상산본(묘향산본)은 6.25 당시 북한으로 반출돼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새로 안식처를 찾은 태백산본은 조선총독부를 거쳐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됐다가 1985년부터 정부기록보존소 부산기록정보센터에서 보관하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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