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모세의 기적

전필수 증권부장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 사내 축구팀에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 바람 빠진 공으로 하던 게임에서도 골을 넣은 기억이 거의 없는 '개발'이지만 뛰다 보면 살이라도 빠지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 매달 1㎏ 이상씩 불어나는 체중을 그대로 둬선 안 되겠다는 위기감도 발걸음을 운동장으로 향하게 했다. 대망의 첫 연습. 운동장 몇 바퀴 도는 것도 고역이었고, 간단한 스트레칭조차 따라 하기 버거웠다. 20~30대 젊은 후배들의 절반밖에 뛰지 않은 것 같은데도 땀은 배로 흘리는 듯했다. 겨우 겨우 체력훈련을 마치고, 4대4로 미니게임을 했다. 골키퍼 없이 조그만 미니골대에 골을 넣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1년 내내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해도 골을 넣지 못했는데 첫 게임에서 2골인가, 3골을 넣었다. 여름 내내 매주 1번씩 경기를 했는데 거의 매번 골을 넣었다. 체력이나 개인기는 가장 떨어지는데 신기하게도 골은 잘 들어갔다. 주위에는 나이 든 선배가 뛰는 게 안쓰러워 애들이 봐주는 것이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여기에 몇몇 후배가 "선배가 위치 선정은 참 잘하는 것 같다"고 추켜세우자 '내가 몸은 못 따라가도 축구지능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은근 들었다.하지만 착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열흘 전 열린 회사 체육대회. 얼굴도 모르는 계열사 사람들과 섞여 경기를 하자 진면목이 바로 드러났다. 축구화까지 폼나게 신고 나섰지만 조깅화를 신고 나온 상대편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정적인 헛발질에 결승골 헌납의 1등 공신(?)이 됐을 뿐이었다. 며칠 후 이 얘기를 술자리 안주로 꺼내놓자 기관장이나 사장이 공을 잡고 앞으로 나가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린다는 식의 직장 내 축구의 무용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좀 더 고급스러운 기술도 소개됐다. 골키퍼가 슈팅한 공을 기술적으로 골대 안으로 처넣는 연습을 해 경기 당일 축구를 좋아하는 기관장에게 멋진 골을 선물(?), 기관장의 기분을 한껏 띄웠다는 에피소드에는 감탄사가 나왔다.대부분의 조직 수장들은 자신이 매우 유능한 리더라고 생각한다. 특히 크고 힘 있는 조직의 수장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마련이다. 부하 직원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경쟁적으로 좋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축구야 웃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업무에서도 그럴 수 있는 게 조직이다. 사장님들, 듣기 좋은 말을 경계하세요.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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