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BP 출판사, 왜곡 번역 논란에 입열어…'재판 때 수정'
201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사진 = 프린스턴대학]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교수의 저서인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의 국내 번역본이 왜곡 논란에 휩싸여 출판사가 해명에 나섰다. 20일 이 책을 출판한 한경BP는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올려 "디턴 교수와 독자들에게 사과드린다"며 다음 판 인쇄 때 수정해 완역본을 출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판매중인 책은 완역본이 아닌, 독자의 편의성을 위해 줄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왜곡 논란이 일어난 것은 디턴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인해 그의 저서 중 유일하게 국내에 번역된 이 책이 조명을 받으면서다. 이 책이 국내 번역돼 출간된 것은 지난해다. 책을 비판하는 이들은 한경BP의 번역이 원저자의 뜻을 상당수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경BP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심화를 지적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디턴을 대비시키기 위해 디턴이 '불평등은 성장의 동력'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책을 편집했다고 지적했다. 한경BP는 책 출간 후 피케티와 디턴의 주장이 서로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광고했으며, 책의 부제도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로 정했다. 하지만 이는 디턴의 주장과 다르다. 이 책의 실제 부제는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다. 또한 디턴은 책에서 불평등의 심화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미국이 눈부신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내총생산(GDP)의 성장과 불평등 해소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또 김 연구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한경BP가 부제목뿐만 아니라 부와 장, 절의 제목을 대부분 바꿨고 원문 내용을 생략하는 한편, 원문 내용의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디턴은 도입(Introduction)에 들어가기 전에 서문(Preface)을 쓰면서 자신의 조부부터 내려온 가족사를 언급하는데, 한경BP는 서문을 생략하고 도입에 이를 축약해 넣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밖에도 많은 부분을 생략하면서 디턴 교수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보건은 물론 불평등에 대한 논의도 크게 축소됐다고 김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한경BP는 페이스북을 통해 "논란이 된 서문과 도입을 프롤로그로 합친 것은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싶었던 편집상의 문제"라며 "왜곡의 의도나 시도는 없었음을 밝혀둔다"고 해명했다. 이어 "디턴 교수에게도 자세하게 설명했다"며 "다만 논란이 일어난 만큼 부제는 원제 그대로 되살리고, 빠진 부분을 되살려서 완역본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디턴 교수의 책 '위대한 탈출' 표지.
아래는 입장 전문. 앵거스 디턴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에 대한 번역 왜곡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블로그에 글을 올렸고 일부 독자들도 비숫한 지적을 했습니다. 우선 논란이 일어난데 대해 앵거스 디턴 교수와 독자들에게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논란 부분에 대한 출판사의 입장을 설명하고자 합니다.첫째 원제목에 붙은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라는 구절이 빠지고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가 들어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부제뿐 아니라 부(part), 장(chapter), 절(section)의 제목이 바뀌었고 원문의 내용중 일부를 생략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례로 (Preface)가 없어지고 (Introduction)도 1/3만 번역돼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우선 일부가 빠졌다는 지적은 기술적으로 맞습니다.이 책의 경우 우리가 서문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Preface)와 도입부문으로 간주할 수 있는 (Introduction)이 별도로 들어가 있어 부분적으로 중복되고 지나치게 길게 나열됨으로써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해 겹치는 부분을 중심으로 뺐습니다. 서문 성격이 너무 길어질 경우 독자들이 이 책을 외면해버리면 진짜 읽어야 할 핵심적인 내용마저 결과적으로 묻힐 수 있기 때문에 편의성을 위해 줄인 것입니다. 이러한 변형을 통상 “editorial change”라고 합니다. 왜곡 논란이 제기된 만큼 문제가 된 (Preface)와 (Introduction)을 다음 판에는 원서 그대로 출간하겠습니다.둘째 불평등에 대한 디턴의 의의부여가 적지않게 왜곡돼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례로 A. 대탈출에 성공하지 못해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부분이 빠졌다. B. 산업혁명과 세계화를 다루면서 그것이 성장뿐 아니라 불평등도 증가시켰다는 대목과 의료/보건 문제가 부차적인 지위로 강등됐다. C. These “health inequalities”로 시작하는 대목도 번역본에서는 빠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부분 역시 서문과 도입부문을 합쳐서 간소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줄어든 것입니다. 불평등한 사례는 본문에 정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프롤로그의 제목을 ‘세계는 너무나 불평등하다’고 단 것에서 보듯 서문과 도입부문을 합치더라도 본래의 취지가 달라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원문을 100% 그대로 전달하는게 옳지만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읽기 편하게 만드는 과정의 하나로 편집한 것임을 이해해주길 바랍니다.또 하나 표지의 부제 ‘불평등은 어떻게 --- ’는 해석상의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원래 부제대로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토마 피케티와 대비되는 문구를 넣음으로써 디턴이 대척점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불평등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한 마케팅 차원의 시도였습니다.덧붙여 본문의 번역에 대해서도 왜곡 의혹이 있지만 내용을 왜곡하거나 바꾼 게 없음을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번역자들도 이번 논란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한경BP는 이같은 논란에 대해 저작권사를 통해 디턴 교수에게 설명했고 다음 판 인쇄때 수정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앞으로도 한경BP는 출간하는 모든 책에 대해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2015년 10월20일 한경BP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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