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 LG그룹 임원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구본무 LG 회장이 직접 주재하는 임원 세미나가 열리는 날이다.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고 주력사업인 전자에선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분기 실적만큼 임원들의 얼굴도 어둡다. 3분기 실적 개선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강당으로 들어서는 임원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이유다. 이쯤 되면 구 회장이 크게 한번 호통을 낼 만도 하다. 보통 경영상의 문제로 오너가 임원들을 모아 놓고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흔하다. 짐작과 달리 이날 임원 세미나는 시종일관 차분하게 진행됐다. 구 회장은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경영환경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분명한 성장의 기회가 있는 만큼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미나가 끝난 뒤 강당을 나서는 임원들의 표정은 밝진 않았지만 다시 열심히 뛰어보자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올해로 취임 20주년을 맞는 구 회장은 지난 20년 동안 줄곧 '인화'를 경영철학으로 삼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용한 변화를 추구해왔다. LG가 GS, LS, LIG, LF 등의 방계 그룹들을 분리시키면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낸 배경이다. 구 회장의 경영 철학은 그의 성장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재벌가를 희화화하는 드라마에서 재벌3세는 어느날 갑자기 실장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는 낙하산으로 그려진다. 실제 재벌가 후계자들이 20대부터 임원으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 달리 구 회장은 현장에서 실무를 먼저 익혔다. 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과장으로 입사했다. 구 회장은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총괄본부장 등을 맡으며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익혔다. 그렇게 6년을 지낸 뒤 1981년에 당시 금성사(현 LG전자)의 이사로 승진하며 경영활동을 시작했다. LG그룹의 부회장이 된 시기는 1989년으로 럭키에 입사한지 15년 되는 해였다. 부회장이 된 뒤에도 회장이 되기까진 다시 5년이 걸렸다. 1995년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총 20년간의 직장 생활을 거친 뒤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구 회장이 권위를 버리고 소탈한 성품의 CEO가 된 것도 이 같은 성장 과정 때문이다. 질책보다는 격려하고 신뢰를 보낸다. 발 빠른 변화 보다는 서서히 움직이며 체질을 변화 시키는 것을 즐긴다. 뛰어난 경영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경청 역시 구 회장의 덕목 중 하나다. 최근 구 회장이 '시장 선도'를 그룹 경영의 기치로 삼은 것도 일맥상통한다. 시종일관 온화한 표정으로 시장 선도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위기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과거 빅딜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반도체사업을 포기해야 했지만 구 회장은 LCD 사업을 분리해 현재의 LG디스플레이를 만들었다.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며 주목받고 있는 2차전지의 경우 구 회장이 1992년부터 시장 선도를 외치며 시작, 럭키금속에서 LG화학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유의 인화를 강조하면서도 시장선도를 내세운 결과물로 모두가 LG가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사업들이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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