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속은 놈이 '바보'인가, 속인 놈이 '잘못'인가

이초희기자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우리가 아주 잘 아는 중국의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 송나라 때 저공이란 인물은 자신이 키우던 원숭이에게 아침에 도토리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반발했다. 그가 말을 바꿔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환영했다는 일화다.조삼모사는 얕은 계략으로 상대를 현혹시키거나 속여 넘기는 일을 빗대는데 주로 쓰이는 말이다. 저공은 잔꾀를 부려 원숭이들을 쉽게 속여 넘겼다. 그런데 반대 입장에서 보면 뻔한 술수를 간파하지 못하고 속아 넘어간 원숭이들의 미련함이 더 큰 잘못이기도 하다.올해 초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담뱃값 인상이 단행됐다. 당초 정부는 담뱃값이 인상되면 금연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반년도 안 돼 정부가 말한 금연율은 점점 뒷걸음질치고 있다. 통계를 보면 담배 공장 반출량은 지난 1월 1억6000만갑에서 7월에는 3억4000만갑으로 껑충 뛰었다. 3억4000만갑은 최근 3년 월평균 담배 반출량인 3억6200만갑과 유사하다.금연율 퇴보는 국내 최대 담배판매사 KT&G의 담배공급량에서도 나타난다. 올 1분기 KT&G의 담배공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1%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2분기에는 19.2%까지 완화됐다. 올 초 담뱃값이 올랐을 때 주위에는 정부가 '증세' 꼼수를 부린다며, 이 참에 진짜로 담배를 끊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금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있으니 확실히 정부의 금연정책은 실패했다. 그러나 세금을 늘리겠다는 증세 정책은 성공했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올해 담배 세수는 작년보다 4조4292억원 많은 11조1717억원이 될 전망이다. 과거에도 나라에서 돈이 필요하면 항상 서민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늘려왔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재정이 어려울 때 주머니를 털어내야 하는 사람들은 민초다. 조선시대에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세금 제도가 있었다. 땅에서 걷는 전정(田政), 군역을 대신하는 군정(軍政), 정부가 곡식을 빌려줬다가 이자와 함께 돌려 받는 환곡(還穀)이 그것이다. '삼정'(三政)이라 불렸던 이 세금제도는 결국 모든 세출을 서민들에게서 쥐어 짜내야 한다는 구조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관리들은 전정을 논, 밭이 아닌 황무지에도 부과해 세금을 거둬들이고, 군정은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군역을 부과해 군포를 뜯어냈다. 환곡은 모래를 섞은 쌀을 빌려주고 받을 때는 흰쌀로 거둬들이는 등 서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수단으로 악명을 떨쳤다. 민초들에게 가혹했던 이 '삼정'은 결국 조선후기 전국에서 일어나는 농민봉기의 원인이자, 양반사회 몰락의 단초가 됐다.정부의 금연정책은 시대를 바꿔 등장한 또 다른 '삼정'이다. 저공이 원숭이를 속였듯 흡연자들은 결국 정부의 증세 정책에 고스란히 말려들고 말았다.담뱃값 인상은 역대 정권들이 자주 꺼내들었던 카드다. 흡연자들의 '의지'가 보잘 것 없다는 걸 정부에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들을 속인 저공을 욕할 것이 아니라, 눈 앞의 속임수도 간파하지 못했던 안목을 비판하자. 담뱃값 인상에 분개하다 몇 달만에 다시 담배에 손을 댄 흡연자들의 얕은 의지가 결국 '삼정'의 꼼수를 성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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