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22일 오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접촉 시작에 앞서 참석자들이 악수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김관진 국가안보 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사진제공=통일부 제공]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남북이 23일 오후 고위급 접촉을 재개했지만 또다시 날짜를 넘기며 24일 현재까지 밤샘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회담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은 지난 4일 발생한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20일 서부전선 포격도발과 관련한 남북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24일 정부관계자에 따르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전날 오후 3시30분부터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북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및 김양건 조선노동당 비서를 만나 이틀째 고위급 접촉에 들어갔다.두 차례 회담에서 북측은 지뢰 및 포격 도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우리 군의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우리 측은 북한이 일련의 도발을 감행했음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한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확성기를 통한 대북심리전 방송의 경우도 북한의 도발이 근본원인인 만큼 성의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북 간 고위급접촉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시인과 사과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2012년까지 북한의 침투 도발은 1959건, 국지도발은 994건에 이른다. 6ㆍ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62년간 침투 및 국지도발이 평균 매년 47건 발생한 셈이다. 이 같은 각종 도발에서 북측이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측은 그러면서도 때로는 북측 최고지도자의 책임은 회피한 채 극단주의자들의소행으로 치부하거나, 한참 시간이 흐르고서 '때늦은' 사과를 하기도 했다. 북한의 자발적인 사과라기보다는 8ㆍ18 사건(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등과 같이 미국으로부터 고강도 군사적 압박을 받거나 남북관계나 주변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을 때 고도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측은 이번 남북고위급접촉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우리 군이 재개한 대북심리전 방송의 즉각적인 중단을 얻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발에 대한 시인과 사과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그동안 1968년 청와대를 향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시작으로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수차례 북측의 사과나 유감 표명으로 사건이 마무리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2002년 제2차 연평해전에 대한 유감 표명 이후에는 각종 도발에 대해 책임을 남측으로 돌리거나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며 발뺌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특히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집권 이후에도 북측의 이 같은 행태는 계속돼 이번 도발에 대해서도 북측의 사과나 유감 표명을 이끌어내는 작업은 험난한 가시밭길이 되고 있다. 북측은 1968년 1월21일 발생한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1ㆍ21 사태)과 관련, 김일성 주석은 4년 뒤인 1972년 5월4일 당시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면담에서 "그것은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으며 우리 내부에서 생긴 좌익맹동분자들이 한짓이지 결코 내 의사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1ㆍ21 사태에 대해서는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2년 5월13일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 자격으로 방북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지른것이다. 미안한 마음이다. 그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응분의 벌을 받았다"고 재차 유감을 표명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1976년8월18일) 당시에는 두 달 뒤인 8월21일 군사정전위 북측 수석대표가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사건들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쌍방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는 메시지였다. 1996년 9월18일 동해안 북한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해서도 북측은 같은 해 12월29일 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을 통해 "막심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남조선 강릉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반도에서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함께 힘쓸 것"이라고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2002년 6월29일 서해상에서 발생한 제2차 연평해전에 대해서도 남북장관급회담 북측 김령성 단장이 같은 해 7월25일 당시 정세현 장관에게 전화 통지문을 통해 "서해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후 북한은 북한군에 의한 금강산관광객 고(故) 박왕자씨 피격사건(2008.7.11), 천안함 폭침사건(2010.3.26), 연평도 포격도발(2010.11.23) 등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소행 자체를 부인하거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다. 북측은 고 박왕자씨 피살사건에 대해 유감을,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해 민간인희생자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힌 적은 있지만 사건 자체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겨 우리 정부는 진정성 있는 유감 표명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양낙규 기자 if@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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