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랩·먹지 활용해 세관 눈속임, 몸 속에 숨기다 적발…쿠키로 만들고 면도 크림통에 넣어 밀수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div class="break_mod">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9732명, 9174명, 9255명, 9764명, 9742명…’어떤 숫자일까. 2010년 이후 해마다 단속되는 마약류 사범 숫자이다. 거의 1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해마다 마약 투약, 마약 소지, 마약 밀매, 마약 밀수로 적발된다. 이러한 숫자가 한국 마약 사범의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돼 있고, 단속의 눈길을 피해 그 행위를 이어간다. 해마다 1만명에 이르는 사람이 마약류 사범으로 적발된다는 의미는 그 이상의 마약류가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마약류를 직접 제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사당국의 눈을 피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약류 제조가 수월한 국가에서 만들어 국내로 밀반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출입국 당국은 매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 뚫어야 하는 쪽과 절대로 뚫려서는 안 되는 쪽의 한판 승부다. 마약밀수는 점점 더 지능화되고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약 밀수 적발은 상상력과의 싸움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 아니 상상하기 어려운 방법까지 동원해서 마약류 수입에 나선다. 조선족 여성 A씨 사례도 그런 경우다. 그의 생리대에는 은밀한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 A씨는 생리대 두 겹을 착용해 그 사이에 메트암페타민(일명 필로폰) 12g을 숨겨서 들여왔다. 여성의 신체는 세관 검색이 어렵다는 점을 활용했다. 국제특송을 이용하는 방법은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소량씩 은닉해서 밀수하면 적발하는 게 쉽지는 않다. 중국 상해 지역의 밀수조직 총책 A씨는 지난 4월 국제특송을 이용해 필로폰을 들여왔다. 수화물 사이에 필로폰을 10~20g 정도씩 소량 은닉해 발송하는 수법을 활용했다. 이 조직의 국내 총책인 B씨는 중국을 다녀올 일이 생기면 여행용 가방 내부에 검은 먹지를 설치한 후 필로폰을 밀수했다. 먹지를 사용하면 세관 엑스레이 적발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방법은 흔한(?) 수법이다. 보다 더 기상천외한 수법도 얼마든지 있다. 2013년 2월 C씨는 콘돔과 비닐로 포장한 필로폰 43.49g을 항문에 숨긴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밀반입하려다 적발됐다. 대마는 더욱 기상천외한 밀수 방법이 동원된다. 2008년 1월 태국 방콕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던 D씨는 대마 농축액인 ‘해쉬쉬’ 약 300g과 엑스터시 10g을 100개로 나눠 비닐랩으로 감아 물과 함께 마신 후 몸속에 숨겨 오다 적발됐다. 해쉬쉬는 대마초로부터 채취된 대마수지를 건조시키고 압착시킨 마약류로 대마초보다 환각성이 8~10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전지방경찰청이 마약사범들로부터 증거용으로 압수한 1회용주사기들
러시아와 속초를 오가는 여객선을 탔던 E씨는 2008년 3월 해쉬쉬 오일 86.65g을 면도 크림통 안에 은닉해 속초항으로 들여오다 적발됐다. 이밖에 2009년 6월 미국에서 보내온 대마쿠키 60개(약 1497g)를 국제특급우편으로 밀반입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대마쿠키는 대마성분인 카나비노이드가 함유된 대마가루와 밀가루를 반죽해 쿠키로 만든 것으로 대마 밀수에 즐겨 사용되는 수법이다. 최근에는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마악류 밀수가 증가해 수사당국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중국 쪽에서 마악류 밀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한국을 오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데다 필로폰의 경우 중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거래 금액이 10배에서 20배에 이른다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에서는 50g 이상의 필로폰을 소지할 경우 사형선고까지 가능하지만, 한국은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되는 실정이다.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벌이 약한 것도 마약류 밀수를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마약밀수를 둘러싼 기상천외한 수법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에는 인터넷 불법 암시장인 ‘다크넷’이 마약류 거래 통로로 활용되고, 대금도 디지털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제우편, 특송화물에 섞여서 들여오는 갖가지 마약류를 적발하더라도 범죄에 연루된 이들을 잡아내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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