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2000년대 이전 국민 대표 보약이었지만 최근 수요 부진건강기능식품, 발기부전 치료제 등 한약 대체재 시장은 대중화[아시아경제 이창환 기자] “남편, 요새 기력도 없는 것 같은데 한의원 가서 보약이라도 지어가지고 올까?”(1990년대의 아내)“남편, 오늘 비뇨기과 다녀오는 것 잊지마! 가방에 넣어둔 홍삼도 잘 챙겨 먹고!”(2010년대의 아내)계절이 바뀌거나 기력이 떨어질 때 우리는 흔히 보약이라도 한 재 달여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습관적으로 말한다.예전부터 여성들은 과로로 기력이 떨어진 남편이나 부모님, 입시 공부를 하고 있는 자녀들을 위해 한약을 지어서 먹였다. 아침에 아내가 챙겨주는 한약 한 봉을 챙겨들고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만큼 한약은 몸을 보호하는 보약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2000년대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한약을 대체할 수 있는 각종 건강기능식품과 신약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보약을 지어 먹기 위해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한약 소비가 정체됐다는 점은 한약의 원재료가 되는 한약재 소비량을 통해 엿볼 수 있다.보건복지부가 올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3년 국내 한약재 소비량은 9596t 수준으로 5년 전인 2008년 8878t 대비 8%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때 한약이 한의원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절반가량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침치료와 달리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한약은 마진율이 높아 한의원의 주 수익원으로 꼽혔다. 한약 소비가 늘지 않는다는 것은 한의원들의 수익이 그만큼 감소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한약재의 소비량이 감소한 주요 원인으로는 첩약과 탕약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 감소, 건강기능식품의 한약재 잠식, 경기침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한약 매출의 정체는 현직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2000년대 후반 서울의 유명 한의대를 졸업하고 경기도의 한 도시에 한의원을 개업한 한의사 K(35)씨는 이 때문에 폐업까지 고민 중이다. K씨는 “해마다 임대료와 인건비는 올라가는데 한의원 매출은 제자리 걸음”이라며 “한의원을 찾는 환자 숫자가 줄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늘어나는 것도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의원 수익을 크게 좌우하는 보약 처방이 부진한 것도 K씨의 큰 고민이다. K씨는 “2000년대 들어 발기부전 치료제나 홍삼처럼 한약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등장한 것도 한의원 수익 부진의 한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약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건강기능식품의 판매량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홍삼제품의 대중화는 보약매출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이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홍삼 제품이 대중화되면서 보약시장을 잠식했다는 이야기다. 국내 홍삼시장 규모는 2005년 5000억원 규모에서 최근 1조3000억원까지 성장했다. 그 사이 한약재 소비량은 크게 늘지 않았기 때문에 홍삼이 기존 한약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일리가 있다.발기부전 치료 신약이 등장한 것도 한약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1999년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는 국내에 세계 최초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들여왔다. 세상에 없던 발기부전 치료 신약의 등장은 남편의 정력 강화를 위해 한의원을 찾았던 많은 가정주부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비아그라를 필두로 팔팔, 자이데나, 시알리스 등 다양한 발기부전 치료제의 등장은 관련 한약시장의 위축을 불러왔다.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시장 규모는 시작 당시 연 100억원도 되지 않았지만 현재 연 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발기부전 치료제시장은 국내 인구의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한의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홍삼과 비아그라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인해 국내 한약의 입지는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서양의학이나 단순 건강기능식품으로 대체할 수 없는 한의학만의 전통과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특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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