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②]'은행의 꽃'은 옛말…'총알받이 지점장'

大기획, 사람으로 보는 금융사회학②차포 다 떨어진 지점장…대출자 '관상' 보던 절대권력, 지금은 계급장 떼고 영업 전선 누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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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화이트칼라'의 아이콘이자 '금메달 직장인'이었다. 나라 곳간이 부실하던 시절 은행원은 경제 개발의 대동맥에 피(자금)를 공급하는 귀한 몸이었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으로 대접받았고, 가문의 영광이었다. 하지만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신화가 깨졌다. 초저금리 시대 들어서는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모바일이라는 변화의 파고에도 휘둘린다. 이제는 겨우 '동메달 직장인'일 뿐이라고 그들은 씁쓸해한다. 달라진 위상은 오늘날 금융산업의 척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대한민국에서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그 의미를 5회에 걸쳐 들여다보자.<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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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야전사령관, 소행장, 은행의 꽃.'한때 은행 지점장에 따라붙던 수식어들은 화려하고 막강했다. 은행 창구에서 예금을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원, 즉 '소총수'들을 지휘한다고 해서 '야전사령관'이라고 불렸다. 지점운영권을 은행장으로부터 위임받은 '소행장'으로도 통했다.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꼭 해보고 싶은 '은행의 꽃'이었다. 세월이 변했다. 외환위기를 거쳐 초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령관의 명령은 권위를 잃었고 소행장의 권한은 빛이 바랬다. 꽃잎도 시들해졌다. 이제는 실적 압박에 밤잠을 설친다. 시중은행 압구정 지점의 김모 지점장은 영업본부장의 호출을 받을 때마다 "신경 쇠약에 걸린다"고 토로했다. 6개월마다 진행되는 실적평가에서 그는 연달아 C와 D를 받았다. 한번만 더 C 또는 D를 받으면 '3진 아웃 제도'에 걸린다. 짐을 싸서 집으로 가야 한다. "야전사령관? 소행장? 다 옛말이죠. 지금은 차포 떨어진 장기알 신세죠." 김 지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1997년 외환위기 전만해도 지점장들은 무소불위였다. 운전기사 딸린 승용차가 나왔고 기침 한번이면 행원들의 군기가 바짝 들었다. 대출의 전권을 쥐고 있었으니 한푼이 아쉬운 기업가들에게는 생사를 쥔 '절대 권력'이었다. 기업이 대출을 받으러 오면 지점장은 '관상'을 보고 돈을 빌려줄지를 결정했다는 우스갯 소리가 떠돌던 그 시절. 100억원을 대출해주면 '커미션 피(commission fee)'니 '1%룰'이니 해서 1억원 정도를 지점이 활동비로 챙겼다. 그 활동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지점장의 몫이었다. 부작용도 컸다. "지점장이 지시한 대출은 반드시 사고가 터진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외환위기를 관통하면서 은행 신화는 무너졌다. 지점장 자리도 쇠락했다. '리스크 관리' 개념이 도입되면서 지점장 권한이 대부분 본사로 넘어갔다. 이제는 대출도 지점장이 결정하지 못한다. 지점장의 전결이라고 해봤자 담보대출은 10억원, 신용대출은 1억~2억원에 불과하다. 수백억원을 주물렀던 손이 이제는 겨우 몇억 대출에 벌벌 떤다. 저마저도 회수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A은행 박모 지점장은 "'전결권'을 최대한 이용해 대출실적을 늘리려고 해도 깐깐하고 보수적인 본사 대출심사가 발길을 잡는다. 설사 그렇게 10건의 대출을 성사시켜도 1건만 부실이 터지면 지점이 들썩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와중에 금리경쟁으로 이탈하는 고객을 붙잡아야 한다. 산토끼(타 은행 고객)를 잡는 게 아니라 집토끼(자기 은행 고객)를 빼앗기지 않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내부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시중은행은 전국 영업본부 소속 지점의 실적을 날마다 공개한다. 이 성적표에는 예ㆍ적금, 대출, 신용카드 신규발급, 방카슈랑스 실적 등이 꼼꼼히 나열돼 있다. B은행은 지점 실적 하위 30%가 3년간 지속되면 명예퇴직을 권고한다. 지점장은 매년 두번 평가를 받고 하위에 속하면 인사 대기발령자로 밀려난다.  지점장에게 그나마 남아 있는 인사고과도 칼날이 무더졌다. 지점에 온지 올해로 3년된 C지점장은 "승진을 포기한 후배들에게는 지점장의 고유권한인 인사고과가 무용지물이다. 자기 할 일만 따박따박 하면서, 알게 모르게 지점장 말에 반기를 드는 직원이 있는 지점 분위기는 냉랭하다"고 토로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02년 2분기 4842개였던 전국 은행지점은 2008년 4분기 5725개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해 올 1분기 5442개로 줄었다. 시중은행 D지점장은 "요즘은 임원급들도 현장에서 영업을 뛰는 시대인데 지점장이야 말해 무엇하냐"며 "계급장을 떼고 전선에서 적자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지점장의 신세는 생존의 기로에 있는 은행의 척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씁쓸해했다. ☞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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