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가입이 결국 毒…제조업 취약한 경제구조+통화주권·정책 유연성 발목잡혀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신화의 나라' 그리스가 어쩌다 '빚쟁이 나라'로 전락했을까. 경제에서 근본 원인을 찾자면 약한 제조업 기반 탓에 자생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약점을 메워줘야 할 정치권에 제대로 된 리더십이 없어 결국 그리스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그리스는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서비스업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국민에게 경쟁력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것이다.그리스 경제를 떠받치는 양대 산업은 관광과 해운이다. 해운업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불황이 불어닥쳤다. 관광 역시 글로벌 경기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다.제조업 기반이 약해 2001년 유로 가입은 되레 독이 됐다. 도입 초기 저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보니 유로는 만능열쇠처럼 보였다.그러던 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리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제조업 강국 독일은 유럽 경제위기에 따른 유로 약세가 되레 수출 호황으로 이어져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했다.하지만 제조업 기반이 약한 그리스에 유로 약세는 재정적자를 심화시키는 요인일 뿐이었다. 특히 그리스 중앙은행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하지 못해 경제위기는 점차 심해졌다.이후 그리스에서 경제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며 유로존 탈퇴 문제가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뚜렷한 비전 없이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멜 것만 강요했다.그리스에서는 1974년 군부독재 종식 이후 신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체제가 형성됐다. 올해 초 시리자(급진 좌파연합)가 집권하기 전까지 양당은 40여년간 정권을 주고 받았다. 양당의 장기 집권은 위기 대응 능력이 부족한 나태한 정권을 만들고 말았다.사회당은 1981년 처음 집권했다. 당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복지국가를 천명하며 획기적으로 사회보장 시스템 확대에 나섰다. 이후 사회당과 신민당은 경쟁적으로 복지를 늘려갔다.정부는 일자리 제공이라는 이름 아래 공무원 숫자를 늘렸다. 노동인구 4명 중 1명은 공무원이었다. 정부는 이들에게 막대한 연금을 지급했다. 그리스에는 '연금천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2010년 그리스 구제금융이 시작되면서 독일에서는 일도 하지 않는 그리스인들에게 왜 자기들 돈을 지원해줘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그리스 정치권은 복지를 늘리면서 잇속까지 챙겼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12년 장기 집권기 동안 자기 아들인 게오르기우스 파판드레우를 교육문화부 장관에 기용했다. 아들 파판드레우가 2009년 총리직에 오르면서 파판드레우 일가는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아버지부터 3대가 총리직을 차지한 정치 명문가가 됐다.하지만 구제금융기인 2012년 파판드레우 총리의 어머니 마르가렛 파판드레우가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 5억5000만유로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스 국민은 파판드레우 일가에 엄청난 배신을 느껴야 했다.경제 자생력이 약한 그리스가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할 수 없다면 현재 3200억유로가 넘는 대규모 빚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 대학 교수 등 일부 경제학자들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크루그먼 교수는 지난달 28일 자기의 뉴욕타임스 블로그에서 "채권단이 그리스에 무기한 긴축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가 지금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태"라며 "유로존을 탈퇴해도 더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박병희 기자 nu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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