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25일 오전 국무회의를 지켜본 유승민 원내대표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기자들 앞에서는 애써 웃음 지었지만 "여당의 원내사령탑이 정부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는 본인을 지목한 대통령 발언에서는 당혹감이 묻어났다. 대통령 발언을 지켜본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이 탈당하든, 원내대표가 사퇴하든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이라는 말이 돌았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유 원내대표의 뇌리에는 박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은 10년 전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맡던 2005년 1월 단행한 당직개편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진정한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당시 라인업은 김무성 사무총장, 박세일 정책위의장, 전여옥 대변인 그리고 유승민 대표비서실장이었다. TK와 PK, 친박을 아우르는 인사였다.그 중에서도 유 비서실장은 박 대표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다. 출신지역이 똑같이 대구이고, 2004년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한 이후 당내 경제전문가이자 지략가로 활약이 대단했다. 비서실장직을 수차례 고사했음에도 박 대표가 끝까지 요청한 배경이기도 하다.비서실장은 지금의 유 원내대표가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2005년 10월 비례대표를 내려놓고 대구 동을 보궐선거를 통해 지역구로 갈아탄 것도 박 대표의 도움이 컸다. 또 2007년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에서는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는 등 친박 핵심을 자임했다.유 원내대표는 당시 경선에 대해 "박근혜 후보 편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이후에도 친박 행보는 계속됐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MB저격수를 자임했고 2011년 7월 전당대회에서는 홍준표 의원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르면서 친박계의 핵심주자로 자리매김했다.하지만 2011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두 사람 사이에는 균열이 생겼다. 당시는 한나라당 보좌진의 선관위 디도스공격 사건이 불거지면서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고 정치적 은둔생활을 시작한 시점이다.박 비대위원장의 행보를 공개 비판하기 시작하거나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도 '철학이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친박이지만 '소신 발언한다'는 이미지를 심으면서 친박계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올해 2월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정치적 은둔을 청산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당청 관계는 수평적"이라거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을 꺼냈고 교섭단체 연설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더 이상 지킬 수 없다"고 말해 야당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을 넘어 그가 가장 싫어한다는 '배신' 행위로 비쳐지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선거를 통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주장한 것도 사실상 유 원내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다.여기에 공무원연금 개혁이 청와대의 기대에 못미치고 시행령 강제 수정 논란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마저 국회를 통과하면서 두사람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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