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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위조금화'는 어떻게 막았을까? 홀로그램과 숨은그림, 은폐선 등 지폐 속 위조방지 기술을 보며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금화와 은화 등이 공식화폐로 쓰였던 고대에도 '위조화폐'는 골치덩어리였습니다. 특히 금(金)의 경우 광채가 나는 데다 밀도가 높아 큰 액수의 화폐로 쓰였기 때문에 위조 여부를 알아내는 데 많은 공을 들여야 했지요. 과거 지도자들은 주화에 자신의 얼굴이나 인장을 새겨넣는 방식으로 중량과 순도를 보증하려 했습니다. 오늘 날 대부분의 국가가 화폐에 당연스레 위인의 얼굴이 넣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금화의 위·변조를 막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겉보기엔 별 차이가 없지만 순도는 다른, 금의 특성 때문에 '불량금화'가 유통됐기 때문이지요. 이 불량금화를 걸러내는 기술, 이른바 '위조금화 방지기술'을 고안해 낸 건 고대 왕국 리디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도구는 '지역산 돌'과 '24개의 바늘'이었습니다. 시금석에 금을 문지른 다음 그 흔적을 24개의 바늘로 구성된 시험도구를 문지른 흔적과 비교하는 방식이었지요. 24개의 바늘은 금, 은 그리고 구리를 다양한 비율로 섞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24캐럿을 순금이라고 보는 것도 이 바늘들 중 24번째가 순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국가가 화폐의 제조를 도맡으면서 중량과 순도를 일정하게 맞추긴 했지만 위조금화는 여전히 성행했습니다. 사람들은 동전의 테두리를 깎거나 가방에 금화를 넣고 흔들어 금가루를 손에 넣었습니다. 시중에는 중량이 모자라는 금화가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중량이 줄어든 불량화폐의 등장은 '주화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동전의 테두리를 오톨도톨하게 만드는 공정이 추가된 것인데요. 이 방법은 1660년대 영국에서 처음 채택된 이후 오늘날까지 불량주화를 막는 기술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우리가 사용하는 50원, 100원, 500원에는 각각 109, 110, 120개의 톱니가 새겨져 있습니다. 일부 왕들은 화폐 위조를 막기 위해 때로는 파격적인(?) 방법을 쓰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헨리 1세는 화폐의 품질이 떨어지자 화폐 제조자들 100여명을 불러 오른 손목을 자르는 형벌을 내렸고, 중세의 중국은 전국의 화폐위조범을 조폐기관에 채용해 위폐 제조를 막았습니다. 이후 무역이 발달하면서 금화는 자취를 감추게 됐습니다. 보관과 운반이 어려웠던 탓이지요. 이 때 금화 대신 사용됐던 어음과 보관증은 오늘 날 지폐의 전신이 됐습니다. 금화를 사용했던 과거나 동전, 지폐를 사용하는 현재도 화폐의 위조를 막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화폐는 '위조화폐와의 전쟁'을 통해 발전을 거듭하며 그 역사를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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