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강력한 증거는 ‘기쁨을 아는 몸’

이응준 작가 “유려한 번역의 표현이 申의 ‘전설’에 나온 건 의식적 도용”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1.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u>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u>,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1983년 시인 김후란이 번역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연회는 끝나고, 우국’ 中, 주우 펴냄)#2.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u>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u>.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中, 1996년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 수록, 소설집 제목이 2005년 ‘감자 먹는 사람들’로 바뀜)

이응준

누가 봐도 두 문단은 비슷하다. 두 문단에서 밑줄 친 대목을 주목하자. 신경숙이 표절을 공론화한 소설가 이응준은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표현은 “가령 ‘추억의 속도’와 같은 지극히 시적인 표현으로 의식적으로 도용(盜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다”며 “어디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을 실수로 적어서는 결코 발화될 수 없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 표현이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비꼬았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다른 번역과 비교하면 더 잘 이해된다. #3. 두 사람 모두 실로 젊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라 이들의 사랑 행위는 매우 격렬하였는데, 이것은 밤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에서 돌아온 중위는 먼지투성이 군복을 벗다가 그 틈도 참지 못해, 집에 돌아온 그 자리에서 아내의 가는 허리를 꺾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곧잘 이에 응하였다. 첫날밤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될까 말까 할 때, <u>레이코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u>,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 (2003년 황요찬 번역으로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憂國) 中, ‘이문열 세계명작산책2’에 게재, 살림 펴냄)신경숙의 #2 문단은 #3 문단과 비교해도 표절했다는 의혹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비해 신경숙의 #2 문단을 #1 문단과 비교하면 신경숙이 #1 문단을 일부만 살짝 바꾸고 살을 덧대 표절했음이 훨씬 더 뚜렷해진다. 바로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독특한 표현 때문이다. 이응준은 16일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경륜 있는 시인 김후란의 유려한 번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憂國) 속 저 부분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거라고 주장하려면, 가령,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라고 빗댔다. 신경숙이 스스로 저 문단을 썼는데 김후란이 번역한 미시마 글과 비슷하게 된 결과는 발생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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