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채무인간]빛이냐 빚이냐…금융소비자의 운명은

투자로 빛 보려다 빚살이…양날의 검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1. 8년 차 작곡가인 김아름씨는 최근 자신의 저작권료를 담보로 시중 저축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았다. 금리는 8%로 2~3년 전보다 2%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김씨는 "월급받는 직장인이 아니다 보니 이 정도 대출금리면 양호한 수준"이라며 "대출금으로 작곡기계를 사고 남은 돈으로는 주식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달 수익률만 10%가 넘는다. 빚을 냈지만 이자 이상 수익을 거뒀으니 이득이 아니냐"며 반색했다.  #2. 대기업 직장인인 30대 주대현씨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2년 전 송파구에 신혼집을 마련했는데 2억원이던 전셋값이 2억8000만원으로 8000만원이 올랐다. 집값이 싼 지역으로 이사하자니 출퇴근 거리도 문제고 아내의 반대도 심하다. 그렇다고 전세대출 9000만원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8000만원의 빚을 내자니 자칫 다중채무의 덫에 빠질까 두렵다. 주씨는 "매달 이자를 포함해 163만원을 상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초저금리시대라고 해도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빚은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부채를 지렛대(레버리지) 삼아 더 큰 수익을 낼 수도 있지만 무리하면 빚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올 들어 폭증하는 가계부채를 두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이유다. 이래저래 꿈틀거리는 부동산 가격과 역대 최저인 금리는 더 많은 채무인간을 낳고 있다. 유례없는 유동성 호황 속에 겁 없이 빚을 쓰는 이들이다.  이미 가계부채는 11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부채가 폭증하는 배경으론 '한 번 빚은 끝까지 갚아야 한다'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성격과 은행에 대출 책임을 일절 묻지 않는 구조가 꼽힌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은 빚을 채무자와 채권자의 공동책임으로 여긴다"면서 "유독 우리나라만 빚을 안 갚으면 '죄'라고 여기고 채무자에게 100% 책임이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외국은 부실화된 빚에 대한 책임을 채권자에게도 묻기 때문에 그만큼 대출을 내줄 때 금융권도 신중하다는 얘기다. 미국의 일부 주는 채무자의 생애 첫 주택의 경우 경매 처분을 할 수 없도록 하면서 은행도 일정부분 위험을 떠안고 있다.  늘어난 빚은 부동산이나 코스닥이나 부실채권(NPL)시장처럼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투자처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고문서(古文書) 딜러인 40대 차형진씨는 지난달 목동 지역의 5억원대 아파트를 3억8000만원 전세를 안고 매입했다. 전세 보증금은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빚이지만 그는 부담이 없다고 했다. 차씨는 "지금 같은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이런 레버리지식 매입이 이득"이라며 "실제로 매입 후 1000만원가량 가격이 올랐다"며 자랑했다.특히 코스닥은 올 들어 30% 넘게 폭증하며 개인투자자 자금만 1조원 넘게 빨아들였다. 5년째 주식투자를 해온 직장인 임예슬씨는 '절대 빚은 안 진다'는 주의였지만 최근 주거래은행에 1000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다. 급전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투자금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임씨는 "금리가 낮으니 빚을 내는 데도 큰 부담이 없다"며 "일단 투자를 해본 뒤 수익이 좋으면 마이너스통장 금액을 늘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들어 코스닥 신용융자 잔고가 거래소 신용융자 잔고를 넘어섰다"라며 "빚이 주가를 올리고 주가 상승이 다시 빚을 부르는 선순환 구도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빚폭탄이 터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진작부터 나왔다. 빚이 많아도 갚을 능력만 되면 괜찮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빚 비율은 지난해 이미 164% 수준으로 미국의 113%는 물론 금융위기 위험 국가인 스페인의 130%도 훌쩍 넘었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지난 3월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가계빚 위험국'으로 꼽았다. 송의영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금리가 오르고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금융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2002년 카드 대란 정도의 충격은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저소득층과 비은행권은 타격이 크리라 본다"고 내다봤다.  우리 가계빚은 전체의 60% 정도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통하는 식이다. 때문에 가계부채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은행에게 일정 부분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처럼 집값과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모두 대출자(가계)가 떠안는 구조에선 은행이 대출에 신중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미국 프린스턴대의 아티프 미안 교수는 '책임분담 부동산담보대출'이란 대안을 제시했다. 집값이 내리면 은행도 어느 정도 손실을 같이 안는 등 채권자와 채무자가 위험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금융부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