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사실... 그 리포트 가라(가짜)예요." 바이오 섹터를 담당하는 대형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바이오 기업의 적정주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 애널리스트는 바이오 '업종 특성상 어쩔 수 없지 않냐'며 이같이 말했다. 바이오주가 실적 보다는 기대감으로 움직이는 만큼 업종 특성을 운운하는 애널리스트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사실 제대로 된 실적이 나오는 바이오주는 찾아 보기도 힘들 정도다. 하지만 '추진 중', '확장성 예상', '전망 밝아', '순항 예상' 등 아리송한 구절로만 가득한 리포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이 애널리스트가 올들어 발간한 바이오 종목분석 리포트에는 적정주가를 판단하는 PER은 물론이고,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제시한 보고서가 한 건도 없었다. 주가 향방은 물론이고 해당 종목을 '잘 모른다'는 얘기다. 비단 이 애널리스트만의 얘기는 아니다. 올들어 주가가 급등한 바이로메드, 랩지노믹스, 바이넥스, 서린바이오, 마크로젠, 한독, 제넥신 모두 투자의견 없는 '가라' 리포트 일색이다. 개미지옥 내츄럴엔도텍 사태를 맞은 바이오주 묻지마 투자에 증권사의 부실 리포트가 일조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심지어 부실 정보를 기계적으로 돌려쓰고, 베껴쓰기까지 한다. 최근 만난 한 코스닥 상장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 회사가 홈쇼핑 업체와 제휴한다는 내용이 나도 모르는 사이 증권사 리포트에 도배가 됐더라"며 황당해했다. 그는 회사가 추진하는 신사업을 어떻게 사실관계 확인 한번 없이 쓸 수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얼마 전 리서치 명가로 통하는 B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개장 전 낸 리포트에 잘못된 정보가 있어 회사 측에서 강하게 항의 중이라며 기사 수정을 요청해왔다. 마음이 급했는지 통화녹음이 되는 회사 전화 대신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해 "(인터넷) 검색해서 쓴 내용인데 업데이트가 안됐나 보다"고 했다. 얼마 전 만난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하루종일 (기관 영업ㆍ탐방 등의 업무로) 돌아다니고 오후 늦게 복귀해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하는데 알고 있는 정보를 리포트에 다 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녹초가 된 상태에서 쓰는 리포트가 얼마나 깊이가 있겠냐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증권사는 주식시장에서 투자정보의 가장 큰 유통처다. 개인투자자나 증권부 기자들이 매일 개장 전 증권사 리포트를 수십건씩 보는 것도 이때문이다. 애널리스트들의 정확성과 신뢰도 떨어지는 정보는 주식시장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증권사 리포트는 뜬소문이 난무하는 주식시장에서 얼마 안 되는 공신력 있는 정보이기도 하다. "증권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당국, 언론, 그리고 애널리스트 이 3개 집단이 성장해야 한다"며 "애널리스트들이 세일즈맨이 아닌 자본시장의 두뇌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던 어느 경영대 교수의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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