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 서거 40주년 맞아 전면 개정판 출간
장준하 선생 (제공 : 돌베개 출판사)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창세기 28장 10~15절에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가 나온다. 야곱이 광야에서 사다리 위에 계신 하나님을 뵙는 꿈을 꿀 때 베고 자던 게 바로 돌베개다. 장준하 선생(1918~1975)은 1944년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된 후 다시 중국으로 파병됐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다. 이때 일본군을 탈출할 경우 아내에게 암호로 약속했던 말이 '돌베개'이다. "중국에 가면 매주 주말마다 편지를 하마. 만약 그 편지의 끝이 성경 구절로 되어 있으면 그것을 마지막 받는 편지로 알아도 좋을 것이다." 결심을 털어놓자마자 면회를 온 아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은 그 암호를 사용했다. "앞으로 베어야 할 야곱의 '돌베개'는 나를 더욱 유쾌하게 해줄 것이다." 멀리 있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의 끝에 선생은 굳은 다짐을 써내려갔다. 장 선생은 1944년 7월 중국 쉬저우에 있던 일본군 쓰카다 부대를 탈출해 충칭 임시정부까지 7개월여에 걸쳐 6000리를 걸어갔던 대장정과 이후 광복을 맞아 1945년 11월 임시정부가 환국할 때까지의 일들을 빼곡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이 수기의 이름을 '돌베개'라고 지었다. 1971년 4월30일 사상사에서 처음 출간된 '돌베개'는 이범석(1900~1972) 장군의 '우등불', 김준엽(1920~2011)의 '장정'과 함께 광복군 3대 회고록으로 손꼽힌다. 회고록에서 출판사명을 따온 돌베개 출판사는 올해 장준하 선생 서거 4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오류와 누락 부분을 바로잡아 전면 개정판 '돌베개'를 새롭게 내놓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수많은 위기의 순간들을 선생은 마치 어제 일인듯 생생하게 들려준다. 일본 학도병 시절, 엄지손가락 동상을 치료하기 위해 다섯 번이나 마취제도 없이 생살을 찢어내고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는 책 첫머리에 등장한다. 보다 못한 일본군 육군 중위가 "외과의사 생활 10여 년에, 너 같은 지독한 놈은 처음 본다"라며 그를 "독종"이라고 불렀다. 선생은 '일본 놈에게 아프다는 소리를 차마 하기 싫었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일본군이 중일전쟁 7주년 기념 회식을 하느라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목욕을 가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 탈출을 감행하는 과정은 어느 전쟁 영화나 소설보다 긴박하고 절실하다.
돌베개
변변한 신발이나 옷도 없이 평양에서 중국 쉬저우, 린촨, 난양, 라오허커우, 파촉령을 거친 풍찬노숙의 대장정 끝에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한 선생은 기쁨도 잠시, 이내 임시정부 내의 무수한 파벌싸움과 공작에 크게 실망한다. 정부 각료는 물론 모든 충칭 교포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그는 폭탄급 연설을 감행한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日軍)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일군에 들어간다면 꼭 일군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충칭 폭격을 자원, 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냐구요? 선생님들은 왜놈들에게서 받은 서러움을 다 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 설욕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네 당, 내 당하고 겨누고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장 선생의 문제제기는 독립이 된 후에도 이어진다. 해방의 기쁨에 취해 임시정부 내에서 호화로운 연희가 계속되는 사이, 뒤에서 강대국들은 이미 우리 민족의 운명을 두고 물밑 작업이 한창이었다. '돌베개'는 "임정이 이렇게 환영과 초대에 분주히 쫓아다닐 때, 이미 임정의 이성은 취하고 있었다"는 말로 끝맺음하는데, 이후 우리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아는 독자들로서는 그 뒷맛이 씁쓸하다. 비록 선생의 수기는 광복 직후의 시기에서 끝나지만, 이후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선생은 '민족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1953년 선생이 발행한 월간지 '사상계'는 서슬퍼런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비판의 칼을 거둬들이지 않으며 등불 역할을 했다. 이후 민주화운동을 진행하면서 1974년에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이듬해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번 개정판에는 이전 판본에서 누락됐거나 초판본 맥락과 다른 단어로 바뀐 순우리말을 원문대로 살렸으며, 잘못 해석된 한자 오류도 바로잡았다. 선생의 6000리 장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와 다양한 컬러도판, 주요 등장인물 소개 등도 보강했다. 때마침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분단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했던 그의 바람 역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광복 조국의 하늘 밑에는 적반하장의 세상이 왔다"는 선생의 한탄과 "못난 조상이 또 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볼 때이다. (돌베개 / 장준하 / 돌베개 출판사 / 1만6000원)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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