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어린이집 진단]30대1, 속터지는 '직장어린이집 경제학'

▲여의도 LG트윈타워 내 직장 어린이집. 출근시간에 자녀를 맡기는 워킹맘이 아침 이른 시간 서둘러 어린이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 김혜민 기자]#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워킹맘 윤나연(가명·34)씨는 만1세 때부터 딸아이를 회사 내 어린이집에 맡겨왔지만 올해부터는 보낼 수 없게 됐다. 사내 어린이집 규정상 3년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최근 집 근처 민간 어린이집에 딸을 입학시켰다. 윤씨는 "식재료와 교육시스템 등 다방면에서 회사 어린이집에 더 믿음이 갔는데 아쉽다"며 "그래도 그동안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직장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윤 씨처럼 3년이라도 직장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으면 다행이다. 국내 기업 중 직장 내 어린이집을 보유한 곳은 소수 대기업에 불과하다. 설사 직장 어린이집이 있다고 해도 경쟁률이 워낙 치열해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8일 재계에 따르면 CJㆍSKㆍ코오롱ㆍ한화 등의 직장 내 어린이집 경쟁률이 적게는 3대1에서 많게는 수십대 1까지 치솟았다. 정부의 직장어린이집 의무설치로 대기업들이 직장 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 직원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의미다.경쟁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는 CJ다. CJ는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직장 어린이집 '키즈빌'을 운영한다. 오후 3~4시에 하원시켜야하는 일반 어린이집과 달리 '우리 아이만 혼자 남았다'라는 불안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먹거리도 친환경, 건강식으로 챙기며 자체적으로 원어민 교육ㆍ체험학습도 진행한다. 서울 중구 어린이집 평가에서는 98.63점으로 최우수 시설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직원은 손에 꼽힌다. 총 직원 2만8000명(계열사 포함) 중 여직원 비율이 40%에 달하지만 키즈빌이 있는 사옥은 서울 쌍림동과 상암동 등 단 두 곳으로 각각 100명, 39명만 수용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매년 입학 경쟁률이 수십대 1을 기록한다. 1순위는 부모 모두 CJ직원일 경우, 2순위는 여직원, 3순위는 남직원 순이지만 3순위까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치열하기는 SK도 마찬가지다. SK그룹은 서울 종로구 서린사옥에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SK에너지 및 SK이노베이션 등 사옥에 입주한 7개 계열사가 함께 이용한다. 정원은 만1세반 12명, 만2세 15명, 만3세 22명으로 총 49명. 평균 경쟁률은 5대1로 지원자가 몰리는 반은 최대 30대1까지 치솟는다. 250명이 지원하면 200명이 탈락한다.

▲SK이노베이션은 서울 서린동 본사에 SK 행복 어린이 집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직원 자녀들이 어린이 집에서 낚시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한화그룹은 서울 2곳과 지방 5곳에 직장 어린이집을 두고 있다. 수용인원은 서울 태평로와 여의도에 196명, 지방 338명이다. 지방의 경우 대부분 정원 미달이지만 여의도 경쟁률은 만2세반의 경우 4대1에 달한다. 여직원들이 1년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져 수요가 가장 많은 것. 그러나 추가 증원 여부는 정해진 바 없다.마포와 창원 두 곳에 어린이집을 둔 효성은 어린이집 정원이 직원 수(마포 1500여명, 창원 2500여명)의 1~2%인 40명으로 당분간 이 수준을 유지할 예정이다. 평균 경쟁률이 1:1.35라 굳이 증원은 필요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러나 정원 미달되는 만3~4세반을 제외하면 실제 경쟁률은 더 치열하다. 코오롱도 과천 본사에 65명 정원인 어린이집을 운영, 평균 경쟁률이 3대1에 달하지만 역시 추가로 늘릴 계획은 없다.포스코는 지난 2013년 서울 포스코센터 내 직장어린이집 정원 수를 60명에서 98명으로 확대했다. 입소를 원하는 임직원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증원 후에도 어린이집 정원은 항상 가득차 여전히 수요를 100% 만족시키지진 못한다"며 "우선순위에 밀려 3순위인 남직원까지 차례가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반면 상급반으로 올라갈수록 정원이 미달되는 경우가 있어,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수용연령대에 따른 정원 조정 등 보다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으로 보인다.두산은 서울 동대문 본사와 강남, 인천, 전북 군산, 경남 창원 등 5곳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평균 경쟁률은 1대0.85로 자리가 남아돈다. 동대문 본사까지 아이를 데리고 나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지만 이보다 수요연령대를 잘못 파악했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효성이 만 3~4세반이 정원 미달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업계 관계자는 "1년 육아휴직 후 복직하는 직원들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만1~2세반이 몰린다"며 "만3세 이상부터는 이미 집 근처 어린이집에 다니거나 조부모에 의존하 는 형태로 양육이 자리잡아 굳이 직장어린이집에 입소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달 29일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은 직장 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한다. 사업주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는 대신 보육수당을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도록 하던 기존 제도는 폐지했다.

▲CJ제일제당센터 CJ키즈빌에서 어린이들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제공=CJ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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