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월요 프리즘] 사람 남기고 떠난 한창도 해설위원

한창도 전 SBS 농구해설위원

48번 국도는 김포평야를 가로질러 강화도로 이어졌다. 개나리 지고 철쭉 흐드러진 20여년 전의 요즈음. 김포에 사는 한창도 SBS 해설위원을 만나기 위해 그 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플레이오프가 한창일 때, 농구 팬도 미디어도 정보에 굶주린 시절이었다. NBA 선수들의 프로필이나 기록,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연감이나 가이드북은 시즌이 한참 지난 뒤에야 손에 들어왔다. 남이 가지지 않은 사진 한 장, 기록 한 줄의 가치가 엄청났다. 그래서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한 위원은 가장 빠르고 정확한 미국농구 소식통이었다. 당시 그는 김포의 통진에서 '잣나무집'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감독, 텔레비전 해설위원 등 농구와 관련해 다양한 경험을 한 그가 수입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하는 농구에 몰입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농구인이 마당에 잣나무가 자라는 '잣나무집'을 찾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 후배들에게는 대개 돈을 받지 않았다. 연봉이 자신의 일 년 수입보다 몇 곱 많은 프로농구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한 위원을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강원도 속초였다. 2010년 2월 3일. 그는 관동대학교에서 교양체육 강의를 했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지역 초등학교에 농구를 보급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벌써 초등학교 팀을 두 개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NBA 해설을 할 때 마이클 조던을 굳이 '마이클 쫄단'으로 발음한 이 샤프한 해설자는 푸근한 할아버지가 되어 꿈나무들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에게서 지혜와 온유를 느꼈다. 그것은 사람을 향한 시간의 선물이다. 진실을 간직한 사람들은 시간의 조탁을 통해 완성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황혼이 아름다운 사람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다. 그가 즐기는 시간의 선물을 나눠 갖고 싶었다. 나는 지난 일요일(26일) 오후 한 위원의 부음을 들었다. 발인은 27일. 미국에 사는 맏아들이 올 때를 기다리느라 4일장을 치렀다는데 사흘째에야 조문한 것이다. 허둥지둥 검은 양복을 갖춰 입고 빈소가 있는 아산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줄곧 48번 국도를 달린 20여년 전의 그 봄을 떠올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huhbal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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