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이 와서 서로 도와주니 반드시 길하고 이로운 일이 생기리라. 봄에는 근심 걱정이 없이 편안하게 지내다가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일이 다소 거슬림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봄동산에 오얏꽃이 때를 만난 듯이 만발하여 재록이 몸에 따르니 뜻밖에 횡재를 하게 되리라. 새해가 되면 한 번쯤 보게 되는 토정비결. 긴 연휴 끝자락에 인터넷 무료 사이트를 뒤져 봤더니 올해는 이렇게 복이 굴러 올 운수란다.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좋게 나온 점괘에 괜시리 기분까지 좋아졌다. 토정비결은 다른 점서와 마찬가지로 비유와 상징적인 내용이 많다. "북쪽에서 목성을 가진 귀인이 와서 도와주리라"는 식의 희망적인 구절이 많고, 좋지 않은 내용도 "이달은 실물수(失物數)가 있으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식으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때문에 절망에 빠진 사람도 희망을 갖게 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조심스럽게 생활을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토정비결이 전국적으로 유행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다. 민생고가 절정에 달하면서 일신ㆍ일가의 화복만이 1차적 관심사로 등장했던 당시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가 덕담 위주의 토정비결로 나타난 것이란다. 이 책의 지은이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1517~1578)은 고려 말 유명한 성리학자인 목은 이색의 6대손이고, 후일 영의정을 지낸 북인의 영수 이산해가 조카일 정도로 명문 양반가 출신이다. 그런데도 과거를 보는 대신 재야에서 성리학 외의 다양한 학문을 접하면서 보냈다. 특히 전국의 물산이 모이는 마포나루 근처에서 흙집을 짓고 살면서 상인들과 교류했고, 무인도에서 박을 재배해 팔아 막대한 부를 쌓기도 했다.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모은 재산으로 이지함은 빈민들을 도왔다. 말년엔 주민들의 추천으로 포천과 아산현감을 지냈는데 '국부론'을 지은 애덤 스미스보다 200년 먼저 해외 교역을 통해 국부를 쌓자는 의견을 냈고, '걸인청'을 만들어 빈민구호에 적극 나섰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회포를 풀며 덕담을 주고받는 설 연휴 기간, 생활고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잊을 만하면 들려왔다. 남들이 즐기는 명절이 없는 이들에겐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토정비결을 지었다는 이지함은 명문 양반가의 기득권을 버리고 당시 가장 천대받던 상업에 종사하며 민중들의 가난함을 해결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토정비결을 보면서 토정의 정신도 한 번 되새겨 보기로 했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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