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요즘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학칙을 몇 번 어기면 강제 전학, 심하게는 퇴학이나 자퇴를 시킨다고 한다. 예컨대 흡연이 세 번 적발되면 퇴학시키는 식이다. 흡연이든 뭐든 학칙을 어기는 것이 있으면 그에 대해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과감하게' 문제학생들을 교문 밖으로 내모는 일부 학교의 벌칙은 너무 가혹한 듯하다. 잘못을 범하고 규칙을 어기는 게 '성장통'의 일부인 청소년의 특성을 생각할 때도 그렇지만 학력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국 사회에서 학교로부터의 추방은 곧 사회로부터의 추방이기 때문이다. 문제아여서 학교에서 쫓겨난 이들은 학교에서 쫓겨나 더욱 문제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아들에게 단호히 추방령을 내리는 우리의 학교에는 혹시 아직도 '착한 학생' 대 '불량학생'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버티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금언도 있듯이, 불량학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합의를 이룬 약속이다. 사람 자체가 불량(不良)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반칙-범치 행위가 문제일 뿐이니 불량학생이 아닌 '비행(非行) 청소년'으로 부르자고 한 우리 사회의 각성과 다짐이 그 같은 약속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아이들에게 불량이란 낙인을 찍으려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노파심을 자아내는 것이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인성평가' 강화 방침이다. 대학입시에서 인성을 평가해 인성이 좋은 아이들을 좋은 대학, 학과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인성이 좋은 아이들이 대학에 가는 것이야 얼핏 합리적이고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인성(人性)을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또 인성을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설령 인성이 좋은 아이를 선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인성이 나쁜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 인성을 교정하고 개선해서 착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해도 되는 것일까.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문제인데, 교육당국이 무슨 비책이라도 갖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라도 이 같은 발상이 과거의 착한 학생, 불량 학생 구분에서 그리 많이 나아가지 못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이고 우리 어른들일 것이다. 문제는 불량 청소년이 아니라 '불량사회' '불량교육'일 것이다.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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