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한국의 '순수주의' 권력

새해 벽두를 강타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위험한 '성전'이었다. 이번 사건에서도 거듭 확인되는 것이지만 극단주의는 자신의 믿음은 순수하며 그 믿음-그 믿음의 완전무결과 절대성-을 비판하는 이들은 제거해야 할 적이라는 '순수주의'와 통해 있다.  그런데 이를 극단주의라고 하든 근본주의라고 하든, 또는 순수주의라고 하든 이를 이슬람에 국한된 것이라고 본다면 그건 이슬람에 대한 오해일 뿐만 아니라 극단주의에 대한 오해다. 어느 사회에나 순수주의자들은 있으며 이들에 의한 성전 또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순수주의가 더욱 위험한 것은 오히려 파리의 순수주의자들과 같은 그 사회의 소수자들이 아니라 그 사회의 지배권력이 순수주의를 갖고 있을 때다. 이들 '순수주의 권력'이 통치하는 사회에서는 합리적 이성보다는 종교적 열정에 의해 그 사회가 다스려지기 쉽다. 이들 순수 집단의 지도자와 추종자들의 관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종교적 추종과 군림으로 묶여 있다. 지도자는 자신을 정치적 리더라기보다는 종교 교주로 생각한다. 그에 대한 대중의 절대적인 믿음과 숭배는 이들 집단에 대한 반대나 비판은 불순한 책동으로, 그래서 그에 말려드는 것은 이들에겐 '바보 같은 짓'에 불과할 뿐이다. 순수함으로 무장하고 결속된 이들은 얼핏 매우 강해 보인다. 신념과 결의에 차 있다. 그러나 실은 그지없이 허약하다. 이는 금속이 이물질과 결합해 합금이 될 때 더욱 단단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화학자 출신의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가 자전적 기록인 '주기율표'에서 말했듯이 무릇 원소들에는 불순물이 필요한 법이다. "많은 원소들이 불순물이 있어야 다른 원소와 결합할 수 있다. 그처럼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생명력을 주는 것은 불순물일 때가 많다." 유대인으로서 파시즘에 의해 '불순물'로 분류돼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그는 불일치를 인정하지 않는 '순수'는 파시즘으로 귀착하기 쉽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도 '매우 순수한 권력'에 의한, 매우 '순수하며 단호한 발언들'이 한국 사회의 불순물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의 순수함에 대한 어떤 의문도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이들의 발언은 그 말이 확신에 차 있을수록 더욱 공허하며, 그 표정이 결연할수록 더욱 가련해 보일 뿐인 것을. 한국의 순수권력이여, 부디 그 버거운 순수의 짐을 내려 놓기를!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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