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못 버리는 저장강박장애…지속적 사례관리·친밀감 형성 필요
발굴·지원 쉽지 않는 저장강박장애…저소득층에 더 위협적노원구, 전국 최초 2013~2014년 쓰레기집 발굴·지원사업 진행…22가구 지원지속적 사례관리·지역복지자원 활용·교류 및 친밀감 형성 중요
▲지난해 10월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1동의 함모(79·여) 할머니의 지하 월셋방에서 자원봉사자·동 관계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사진제공=서대문구)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 지난해 10월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1동의 33㎡(약 10평) 남짓한 반지하 월셋방. 이날 이 좁은 방 안에서는 무려 3t에 이르는 쓰레기들이 쏟아졌다. 집 주인은 기초생활수급자인 함모(79ㆍ여)씨. '저장강박장애' 증세를 보이는 함 할머니는 동 주민센터 직원들의 계속된 권유에도 쓰레기를 치우길 한사코 거부해 왔다. 그러나 박영갑 홍제1동장 등의 8개월여에 걸친 설득 끝에 '쓰레기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함 할머니는 동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시립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는 더 이상 쓰레기를 쌓아두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함씨의 경우처럼 전국 곳곳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두는 쓰레기 집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많은 사례가 하위계층에 집중돼 있는 '복지 사각지대'의 전형인 만큼, 무엇보다 적극적인 발굴과 사례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함씨처럼 작게는 폐지ㆍ재활용품 부터 가전제품, 심지어는 동물 사체까지 다양한 쓰레기들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증세를 '저장강박장애'라 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저장강박장애는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어떤 물건이든지 저장 혹은 보관하지 못하면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증상이다. 통상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돼 있거나, 극단적인 상황에 몰릴 경우 나타나며, 망상장애ㆍ다른 행동장애와 수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저장강박장애는 일반적으로 계층과 무관하게 나타난다. 실제 2011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 200만원 이하 가구의 강박장애 1년 유병률은 0.5%로 300만원 이상 가구와 동일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그러나 저소득층의 경우 현실적으로 입원치료 등을 받기 어려워 저장강박의 위험에 더 취약할 수 있고, 실제로는 발견되지 못한 사례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서울시 노원구에 따르면 구가 2013~2014년간 자체적으로 발굴한 '쓰레기 집' 22가구 중 90%는 저소득층이거나 차상위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도 대부분 차차상위계층이거나 그에 준하는 가구들이었다. 홍제1동의 함 할머니 역시 지난 2003년부터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어렵게 살아왔다.하지만 이같은 저장강박장애를 겪는 저소득층을 찾아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정신질환'이라는 증상이 얽혀 있는 데다가, 어느 정도까지를 이상 징후로 판단할지 등 기준을 정하기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역시 구체적인 현황이나 통계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 때문에 노원구에서는 2013년부터 희망복지지원단과 지역 복지 자원을 통해 쓰레기 집과 같은 위기가정을 찾아내 지원하는 사업을 전국 최초로 진행하고 있다. 이 결과 2013년에는 13가구, 지난해에는 9가구의 주거환경을 개선시켰다. 특히 구는 이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에는 최초로 10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위기가정 구제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문제 접근ㆍ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구도 마찬가지다.구 관계자는 "지역 복지관ㆍ전문가 모니터링을 통해 저장강박 가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얼마나 더 많은 사례가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사례를 찾아내더라도 설득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강제로 치우거나 할 방법도 없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전문가들은 저장강박이라는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역자원을 활용한 발굴과 함께 보다 세밀한 사례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희연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장강박장애의 경우 전형적인 복지 사각지대이지만 인력이나 자원의 한계로 사례를 찾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지역사회 안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문제를 찾아내야 하고, 더 나아가 클라이언트(사례자)와의 지속적인 교류와 치료를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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