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물가 싸고 여유도 찾아' VS '혁신기러기, 힐링이 필요해'

<H3>아시아경제 빅시리즈<15>혁신도시가 바꿔놓은 삶</H3>싼 물가에 반하고 출근교통 체증 없어여유로워진 생활 부처 간 칸막이 제거…조직화합 더 강해져[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 "제 고향으로 내려와서 그런지, 바뀐 삶에 90% 만족합니다."한국감정원은 지난해 1월 대구 신서혁신도시로 이사를 갔다. 경북 출신인 김성찬 한국감정원 부동산평가업무처장은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인연이 있다. 한국감정원이 이전하기 7개월 전부터 혁신도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김처장은 무엇보다 여가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된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공휴일이나 주말 등의 시간에 그는 직원들과 지역 관광지를 둘러보며, 맛집을 찾아 다닌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하잖아요. 이왕 고향같은 곳으로 회사가 왔으니 좀더 지역문화와 동화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여유로워진 생활ㆍ저렴한 물가에 만족…애틋해진 가족애(愛)는 덤"= 김처장은 지금까지 대구 팔공산 갓바위와 동화사, 경남 가야사 해인사, 포항 동해 바다를 포함해서 안동, 성주, 고령 등의 문화유적지를 부지런히 방문했다. 그는 "사실 '화려함 속의 빈곤'이라고 서울에서는 주말조차 쉽게 즐길 수 없었다"며 "지방으로 내려온 후엔 훨씬 더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대구혁신도시로 이전한 다른 기관 직원들과 틈틈이 지역 정보를 교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보다 싼 물가도 이점 중 하나다. 김처장처럼 혁신도시 생활에 만족을 표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여유로운 생활, 편리한 교통, 싼 물가, 자연환경 등에 높은 점수를 준다. 많은 인파와 교통체증,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생활에서 한 발짝 물러서게 된 것이 가장 큰 생활의 변화다.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소비자원의 송선덕 차장은 "매번 꽉 막힌 도로에서 보내는 출퇴근 시간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집이 회사와 가까워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며 "오히려 요즘에는 서울로 출장 가면 수많은 차와 인파가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자연환경이 정말 아름다운데 대도시에서는 감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귀한 풍경"이라고 했다.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직원들이 많다보니 오히려 가족간의 정이 애틋해졌다는 점은 웃지못할 변화다. 경남 진주시 경남혁신도시로 이전한 중소기업진흥공단 정보관리실의 심재헌 차장은 "중학교 3학년인 큰딸과는 항상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주말에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아빠에게 먼저 다가올 정도로 바뀌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심 차장은 "어릴적의 딸아이 모습으로 안길 때면 새삼 진주 발령이 오히려 잘 된 일인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부처 간 칸막이 제거, 혁신도시에서 물꼬 트다=혁신도시에서는 현 정부 들어 부쩍 강조됐던 '칸막이 제거'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LX대한지적공사와 지난 6월 집들이를 마친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은 "부처 간 칸막이 제거는 대화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전기안전공사가 전북에 새 살림을 차린 이후 LX지적공사와 전기안전공사는 사내 복지부터 지역사회공헌 활동까지 함께 하는 네트워크 구축에 줄곧 힘써왔다. 실제 지난 8월 두 기관은 ▲고객만족 관련 정책정보 공유 ▲사회공헌ㆍ홍보 등 업무협력 ▲전북도와 기관의 상생을 위한 협업 등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활발히 소통해왔다. 김지은 LX지적공사 경영지원팀 대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인 교류 모임이 있는 데다 사회공헌 활동 협동 등을 통해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의 얼굴을 자연스레 익히고 대화를 많이 하게 됐다"면서 "사실 국토교통부 소속인 우리(LX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전기안전공사는 이전하기 전에는 전혀 소통할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마치 한 기관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말했다. 전기안전관리공사 기획부 직원 송모씨도 "직원들 간에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부처 간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게 되고, 정부가 추진하는 큰 그림에 대해서도 서로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주말이면 서울로 갔다오면 파김치자녀 교육·육아 등 소홀공기관 기러기 고통, 지자체가 관심을◆ "문화생활 척박, 일-가정 분리 어려워"=그렇다고 모든 게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무엇보다 편의시설이나 의료기관, 문화공간 등이 아직 부족한 혁신도시다보니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은 퇴근 후의 생활이 무료하고 단조로워졌다고 말한다. 학교를 다니는 등의 추억이 없는 낯선 곳으로 이동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 편이다. 문화생활을 즐길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저절로 집-직장만을 오가는 생활로 변할 수밖에 없다. 부산, 대구, 울산 등 기반시설이 갖춰진 지역은 그나마 낫다. 대도시가 아닌 지역으로 이전한 직원들은 앞으로 짧지 않은 기간동안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해나가야 할 전망이다.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가스안전공사의 한 직원은 "요즘엔 오후 5시만 넘으면 주변은 깜깜하고 찾아갈 곳이 없다"며 "여름에는 산책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추워서 그마저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통근 버스가 저녁에 직원들을 싣고 서울로 가버리면 나머지 직원들은 회사에 남아있거나 집에 가는 수밖에 없다"면서 "극장이나 공연장 같은 문화시설이나 쇼핑센터 등의 편의시설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가장 가까운 영화관은 차로 40분 거리인 청주시를 찾아야 해서 좋아하던 영화를 끊었다고 했다. 지난 3월 경남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남동발전의 한 모 차장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현재 방 3개짜리 아파트에서 동료 직원 2명과 함께 살고 있다. 이곳에 내려온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방안에는 옷장도, 책장도 없다. 옷은 행거에 대충 걸어두고 책은 바닥에 쌓아놓는다. '내 집'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으니 퇴근 후에 하는 일이라곤 동료와 맥주 한 잔 하는 것뿐이다. 마땅한 가게가 없어 회사 근처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눈치가 보여서 못 먹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도통 할 게 없으니 일부러 회사에서 일하고 늦게 퇴근하기도 한다"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있다보니 일과 가정의 분리가 안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문화적 황무지에 내려온 것 같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주말 아닌 주말'의 연속…"주말이 3일이면 좋을텐데"=가족을 두고 홀로 혁신도시로 떠난 이전기관 직원들에게 주말은 재충전이 아닌 체력고갈의 시간이다. 보통 금요일 저녁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다가 일요일에 다시 혁신도시로 되돌아오는 긴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 주말은 그들의 표현대로 '고난의 행군'이다. 경남혁신도시로 이전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인력개발처 김순희 과장은 "주말마다 금요일엔 서울로, 월요일엔 다시 진주로 다니다보니 캠핑이나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없어진 지 오래"라고 했다. 김 과장은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주중에 챙길 수가 없어 다음주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줘야 하는 데다 밀린 집안 일이나 청소를 하다보면 주말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면서 "서울과 진주를 매주 오가느라 정신도 없고 체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처음 충북 진천 발령을 접했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내년이면 고3 수험생이 되는 막내아들을 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모씨는 아들 생각에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그는 "잘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주말에 몰아서 아들에게 무언가 하려 하다보니 아무래도 벅찬 건 사실"이라면서 "주말이 3일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 지자체,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삶 들여다봐야=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된 '백년대계' 국가 프로젝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혁신도시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혁신도시의 핵심축인 이전 공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공공기관에 소속된 직원들의 정주여건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늦더라도 시급히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김명준 지역발전위원회 도시환경과장은 "이제 혁신도시의 성패는 중앙정부보다는 각 지자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며 "눈에 보이는 업무 성과나 활동도 좋지만 실제 혁신도시의 기반을 이끌어가는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의 삶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기관 직원과 그 가족들의 정주여건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파급효과도 뒤따를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직원들이 가족과 동반이주를 해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기관ㆍ문화생활ㆍ편의시설 등의 인프라 구축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민진 차장(팀장)·고형광·오현길·조민서·이창환·박혜정·이민찬·윤나영 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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