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40년④]마흔해, 영광의 얼굴들

반도체를 꽃 피운 건 오직…사람이었다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신화를 이룬 데는 '사람'이 8할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부자(父子)의 혜안이 바탕이 됐고, 중요한 순간마다 삼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 있었다.해외에서 기술을 익히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진두지휘한 최고경영자(CEO)들, 위기의 순간에도 선진 업체들에게 기죽지 않은 개발자들 모두 박수를 받을 만한 인물들이다. ◇시작, 그리고 1세대 경영자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은 무턱대고 시작만 해서는 안 된다.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으로 꼽히는데다, 막대한 투자금을 잘못 투입했다간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백지에 가까운 산업을 시작한 1세대 경영자들이 중요했던 이유다. "기존 반도체사업에 대한 전면 검토와 반도체 전체를 대상으로 한 철저한 시장 조사 및 사업성 분석작업 결과를 가져 오시오."1982년 9월. 고 이병철 회장의 지시에 반도체사업부는 삼성그룹내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쁜 사업부가 됐다. 추진팀장은 당시 반도체사업본부장이었던 김광호 상무(김광호 전 부회장)였다. 김 전 부회장은 1979년 반도체 사업에 참여한 이후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에게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불모지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회장까지 올랐다.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지사를 통해 최신 반도체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 이후 경영성과를 되짚어 나갔다. 한 달간의 조사 후 삼성은 메모리를 중심으로 사업계획을 다시 만들기로 했고, 결국 D램 위주로 생산해 경쟁에 뛰어들기로 계획을 굳혔다. 후발 시장진입자인 삼성이 미국, 일본과 경쟁을 시작한 시초였다.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1세대를 대표하는 또다른 경영인은 이윤우 전 부회장이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1983년부터 VLSI(고밀도 집적회로) 사업추진팀장을 맡아 64K D램 개발을 이끌었다. 이어 1985년 256K D램 개발에 성공하고 IBM의 제품 품질테스트까지 통과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다.1987년 들어 애플 PC 붐에 힘입어 64Kㆍ256K D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관련 누적 적자를 해소하고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연어의 귀환'…2세대 경영자들= 막대한 투자금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 이 첨단산업을 이끌어 성공하려면 전문인력이 꼭 필요했던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 '연어들의 귀환'이 없었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으로 회고한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반도체 산업을 익힌 후 한국으로 돌아온 인재들이다. 진대제 전 사장과 황창규 전 사장(현 KT 회장),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 등이 대표적이다.미국 IBM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진 사장은 사측의 회유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1985년 고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진 사장은 "평생 소원이 일본을 앞지르는 것"이라며 "내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이후 진 사장은 16M D램 시제품을 일본보다 먼저 시장에 선보이는 등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 역량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1988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황 사장도 삼성전자의 영입 권유에 귀국을 결심했다. 황 사장은 지난 2002년 발표한 '황의 법칙(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은 2000년대 후반까지 반도체 업계의 정설로 통하기도 했다.권 부회장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해 한국 반도체 산업이 처음으로 일본을 누르고 세계 정상에 오르는 데 기여한 장본인이다. 그는 1997년 시스템LSI부문에 몸담은 뒤 2004년부터 시스템LSI사업부장을 역임하며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기술력 강화에 매진했다.또 2008년부터 반도체 총괄 사장으로 부임해 메모리와 시스템 동반성장을 통한 초일류 반도체 회사로의 도약을 추진 중이며,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현재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이외에 GE와 IBM을 거쳐 샤프사의 고문으로 있던 스탠포드대 전자공학과 출신 이임성 박사, 인텔을 거쳐 내셔널세미컨덕터에서 64KD램 개발담당 부장을 거친 이일복박사, 자일로그에서 반도체 공정개발을 맡던 미네소타대 출신 이상준 박사, 인터실과 사이너텍에서 C-MOS 제조수율 개선에 성공한 이종길 박사 등도 모두 삼성이 기술개발을 위해 영입한 인재들이다. 이같은 인재들 덕분에 삼성은 '세계최초' 신화를 이어가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64KD램 개발이후 한때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일관된 투자결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진대제 박사의 16메가D램, 권오현 박사의 64MD램, 이후 황창규 박사가 256메가D램이 세계최초를 이어가면서 반도체코리아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256메가D램을 개발한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반도체 산업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로 기록됐다.시장도 도왔다. 84~85년 반도체 불황이 86년 246KD램 호황, 88년 1MD램호황으로 이어졌고 95년 윈도OS(운영체제) 특수로 이어졌다. IMF쇼크라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04년 이래 플래시메모리, 2009~2010년 애플호황 등으로 메모리왕국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D램 시장을 석권한 뒤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에스램, 플래시메모리 등으로 이동하며 남보다 앞서 '치고 빠지는' 전략에 충실했다. 이 덕분에 삼성은 불황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수익을 꾸준히 낼 수 있었다.◇기술력으로 '세계 1위' 명성 이어간다= 최근 삼성전자는 모바일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며 전체 실적이 부진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부문에서만큼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삼성전자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 1위 명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PC용 D램에 이어 9월엔 모바일 기기용 D램까지 20나노 제품을 양산하며 본격적인 20나노 D램 시대를 열었다. 업계에서 어렵다고 얘기하던 20나노 D램 양산을 세계 최초로 성공하며 기술 격차를 확인했다.20나노 D램 시대를 연 주역들은 삼성전자의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 최주선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장은 이번에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직급 승진했다. 남석우 반도체연구소 공정개발담당 전무는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데 이어 '자랑스런 삼성인상'까지 받았다. 김일권 메모리사업부 D램 PA팀 수석도 연구개발(R&D) 분야 최고 전문가 집단인 '마스터(master)'로 선임됐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은 고집적화 기술에서 나온다. 한정된 웨이퍼 위의 D램 칩 간격이 줄어들수록 더 많은 칩을 생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은 20나노 D램의 생산성은 25나노 D램보다 30%, 30나노 D램보다 100% 높다고 설명했다. 아직 25~28나노 D램 수준인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크게 벌렸다는 게 업계 평가다. 최근에는 20나노 초반대 공정 비율도 높이고 있다. 3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20나노 초반대 공정 비율이 전체 생산량의 38%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내년 4분기에는 81% 수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또 낸드플래시에서도 지난 8월 생산효율을 기존 제품보다 2배로 높인 '3세대 V낸드' 제품을 처음 선보였다. 이 제품에는 수직구조 낸드플래시(V낸드)로는 처음으로 트리플레벨셀(TLC)로 불리는 '3비트' 기술까지 업계 최초로 적용,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늘렸다.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과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등을 필두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문은 내년에도 역대 최고 영업이익 기록에 도전한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올해 3분기 반도체 부문에서만 매출 9조8천900억원, 영업이익 2조2천600억원을 기록, 각 사업부문 중 가장 많은 영업익을 달성하는 호실적을 거뒀다. 삼성전자는 내년 시스템LSI 부문은 14나노(nm) 미세공정을 적용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통신모뎀 칩을 통합한 원칩 솔루션을, 메모리사업부문에서는 차세대 D램 규격인 20나노급 DDR4와 3차원 수직구조 낸드플래시(V낸드)를 기반으로 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승부수로 띄울 계획이다.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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